작성일 : 22-04-03 21:44
[159호] 여는 글 - 전쟁의 악몽을 다시 느끼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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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악몽을 다시 느끼며

이영환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에프)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 감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우크라이나 내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는 긴급 연설과 함께 단행됐다. 푸틴은 이날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추구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에 외국이 간섭할 경우 즉각 보복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의 확장과 우크라이나 영토 활용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2021년 10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키면서 고조됐던 양국의 위기는 결국 전면전으로 이어지게 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격 침공 첫날인 2월 24일 우크라이나 동부와 북부, 남부 등에서 동시다발 공격을 펼치며 진격했고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내 다수의 군사시설이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진군을 펼쳤고, 수도 키이우 인근 비행장 등 군사시설은 러시아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됐다.
한편 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수백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하였는데 민간인 약탈, 폭행, 살해 등 잔혹한 인권유린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외신이 전하고 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다.
문득 30여 년 전에 겪었던 걸프전이 떠오르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호흡곤란과 폐쇄공포증이 다시금 느껴졌다. 걸프전이 일어나기 전 벨기에 안트워프에서 장갑차, 포탄 등 군수물자를 선적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으로 향하였다. 그때 영국 로이드 보험사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하는 선박은 보험처리가 불가할 것이라고 공표하였다. 따라서 내가 승선하고 있던 선박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전에 내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선박회사에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하였다. 그 당시의 호르무즈 해협에는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 설치된 기뢰가 아직 남아 있어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무사히 담맘에 도착한 선박은 바로 방독 마스크 착용을 교육받았다. 이라크의 대규모 생화학 무기 사용이 예측되었다. 그런데 그때 설상가상으로 선박의 에어컨이 고장 나 선실 온도는 기본이 40도가 넘어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다음날 새벽 세시에 사이렌이 울리자 모두 일어나 방독 마스크를 착용하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고온에 힘든데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몇 시간 만에 모두 기진맥진 탈진상태에 이르고 호흡곤란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땀에 시야까지 흐려져 공포감이 밀려와 견딜 수 있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결국, 쓰러지면서 방독 마스크를 벗어 버렸다. 다른 분들은 나를 지켜보면서 끝까지 견뎌냈다. 아마도 무의식중에도 죽음의 공포가 더 컸을 것이다.

한참(아마도 30분에서 1시간)을 기다려 내가 아무 이상이 없자 그제서야 하나둘 방독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10여 년간 분진이 많은 작업장이나 추위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기 힘들었다. 직접적인 전쟁을 겪은 상황이 아닌데도 이처럼 트라우마가 남는데 실제 피해 당사자는 얼마나 힘이 들까를 상상하기는 무척 어렵다.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그저 무색할 따름이다.

지금의 전쟁은 강대국 간의 이해득실이 맞물려 벌어지는 신냉전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군사동맹 확대, 병력증강, 무기배치 등으로 동진 정책을 강화하고 나토(NATO)가입이 14개국 확대되고 러시아의 자국 안보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전쟁이 우리라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두려울 뿐이다. 영화 ‘국제시장’에 보면 흥남부두에서 헤어진 누이동생을 찾는 주인공이 나온다. 다행히 기억의 단편들이 맞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도 이 땅에는 아직도 찾지 못한 수많은 이산가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50년 만에 적십자를 통해 연락이 닿은 막내 누이동생을 못 만나보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중의 하나의 아픔이다. 전쟁은 이런 수많은 아픔을 만들어 낸다.

전쟁이라는 비참한 단어가 없어져 진정한 지구촌이 될 수는 있을까? 서로의 이해관계가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되어 달성될 때 서로가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촌 이웃이 되리라 확신한다. 러시아의 강제 침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이 하루빨리 멈추고 평화적인 해법으로 풀릴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노력과 이해 당사자 간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전쟁의 물자를 수탈하고 강제징용, 위안부 피해 등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보면 국가 간의 평화적인 관계 정립도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갈등, 기후위기 등 국제사회가 풀어가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전쟁이라는 가장 비참한 수단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며 더 큰 갈등만 야기할 뿐이다. 한시라도 더 빨리 전쟁을 멈추고 협상의 테이블에서 문제가 풀리기를 바라며 하나의 중국 정책을 추구하며 양안 간의 긴장이 점증하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과 동북아의 정세는 지구촌 저 먼 곳에서 일어난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두려울 따름이다.

※ 이영환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