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2-02 14:39
[167호] 인권 포커스 - 묻는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2,615  

묻는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김창원


2022년 8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국민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10월 29일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73일 만에 깨졌다. 국가의 책임을 묻는 말에는 추도가 우선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나아가 ‘주최자 없는 행사였다’며 행정안전부와 자치단체의 법적 의무가 없다고 한다.  

참사냐 사고냐는 논란까지 벌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를 ‘Incident’라 표현했다. 예기치 않은 일로 발생한 사건 또는 사고이기는 하나 심각한 상해나 인명손실이 없는 경우로 해석된다. 문제가 제기되자 ‘incident’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재난 또는 참사의 의미로는 ‘Disaster’를 쓴다.) 

어학 사전을 찾아보면 ‘참사’는 비참하고 끔직한 일, ‘사고’는 뜻밖에 갑자기 일어난 좋지 않은 일로 풀이되어 있다.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만, 참사는 명확한 책임 주체가 있는 사건이 된다. ‘희생자’로 부르는 이유도 그 죽음이 단순히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죽음이기 때문이다.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참사냐 사고냐’는 논란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사고로 사망자로 부르길 원했던 것이다. 과연 국가의 책임이 없는 사고였을까?   
‘주최자 없는 행사’였다는 이유로 용산구청과 행정안전부는 자치단체의 법적 의무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4조에는 국가의 책무가 명시되어 있으며(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4조 1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행정안전부장관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한다(동법 제6조).
지방자치단체장은 재난이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응급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동원 명령, 위험구역 설정, 통행 제한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용산구청과 서울시, 행정안전부는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의 “주최 쪽 요청이 없으면 경찰이 나설 법적·제도적 권한에 한계가 있다”(10월 31일 대통령실 관계자 브리핑)는 해명은 압권이다. 나아가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정상황실은 대통령의 참모 조직이지 대한민국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한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묻게 된다.  

‘용산경찰서는 2022년 10월 초부터 수차례 핼러윈데이에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여 서울경찰청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전 대비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다.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열리는 축제였다. 10월 29일 이태원에는 13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과연 국가, 구체적으로 경찰이나 용산구청은 인파가 몰리는 상황을 예견할 수 없었을까?  

참사 당일 시민들은 112에 수차례 위험을 알리는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력은 제때 배치되지 않았다. 해밀턴호텔 골목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등으로 위급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도 있었다. 위험 모니터링은 공무원인 경찰의 직무 중 하나다. 위험 발생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서양 축제에 왜 그렇게 열광하나?’, ‘사람들 많이 몰릴 거 알면서 이태원에 왜 갔나?’ 말하지 말라.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놀러 간 것은 참사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재난 전문가 스콧 게이브리얼놀스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참사는 운이 나빠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나쁜 계획, 정확히는 나쁜 무계획 탓에 벌어진 것”이라며, ‘무계획’을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인파가 몰릴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턱없이 부족한 경찰력을 배치했고, 사고를 예견해 대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11월 22일, 유가족들은 처음으로 공동입장을 밝히고 6가지 요구안을 발표했다. 1) 참사의 책임이 피해자가 아닌 정부와 지자체, 경찰에 있다는 명확한 입장 발표와 사과, 2) 모든 책임자에 대한 빠짐없고 엄격한 조사 약속, 3) 피해자 참여를 보장하는 참사 전후의 투명한 진상규명, 4) 유가족과 생존자를 포함한 모든 참사 피해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 보장, 5) 희생자 이름 공개에 대한 유족 의사 확인 및 추모의 대책 마련, 6) 2차 가해에 반대한다는 명확한 입장표명 및 방지대책 마련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태원 참사로 숨진 희생자 6명의 유가족이 영정과 사진을 들고 참석했다. 고인이 실명 공개에 동의한 유가족들은 가슴속 이야기를 절절하게 끄집어내었다.  

“이것이 저희 아들 사망진단서다. 사망 시간도 추정이고 사인도 미상이다. 어떻게 부모가 내 자식이 죽었는데 사인도 시간도 장소도 알지 못하고 자식을 떠나보냅니까?… 내 아들이 죽은 이유가 무엇인지 엄마인 나는 알아야겠다. 저는 아들에게 약속했다. 아들 잘못 아니라고, 아까운 스물아홉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 이들의 잘못이라고, 이제 넋 놓고 눈물만 흘리지 않으려 한다고.… 더 이상 우리 아들딸들을 영정사진도 육체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故 이남훈씨 어머니) 

“마지막으로 우리 딸 상은이를 대신해 절규합니다. 저는 국가에 묻고 싶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하였는지,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합니다.” (故 이상은씨 아버지) 

막을 수 없는 일과 막을 수 있는 일이 있다.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않는 것은 무책임이다. 공직자의 권한은 책임을 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며 물어야 한다. “국민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이라는 사실을.

※ 김창원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