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2-02 11:31
[167호] 시선 둘 - 제17회 울산인권마라톤 활동후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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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울산인권마라톤 활동후기

손현정


코로나 19로 긴 쉼 기간을 지나 3년 만에 인권마라톤대회를 개최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금이나마 일손을 보태보고 싶어 울산인권운동연대의 문을 열게 되었고 약 2달간의 준비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은 너무 어색하고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대표님을 비롯한 사무국 분들은 2019년 제16회 인권마라톤대회까지 업무를 함께하신 경험들을 공유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더욱 저를 주저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국장님과 가연 활동가님께서 저의 주저함을 ‘인연’ 소식지 인쇄물 접기, 우편 포장, 발송 같은 단순 업무를 나누어 주시면서 다 날려버리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소식지 이름처럼 제게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해 주었습니다. 근데 그땐 미처 몰랐습니다. 여긴 가내수공업 공장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아뇨! 알았지만 모른 척 한 것 같습니다. ‘인연’소식지를 발송하기까지 인쇄물을 찾아서 책자로 만드는 것을 직접 손으로 접고 분류하는 것을 함께 했을 때 알 수 있었는데…
그렇지만 저는 인권마라톤 준비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과정을 통해 인권을, 울산인권운동연대를, 연대활동가님들을 아주 조금이지만 알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권마라톤을 준비하는 것은 제게 전쟁 같은 거였습니다. 전투 중에 서로서로 지켜줘야 하는 것처럼 비록 각자 역할은 분담되었지만, 항상 서로의 일을 함께하며 응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라톤 접수, 자원봉사자 접수, 마라톤 초청장, 대회안내 책자 제작, 기념품 티셔츠와 달력 제작, 관공서 협조요청 및 서류접수, 마라톤대회의 안전에 대한 점검 및 보안 등 이 모든 것이 한정된 인력으로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매번 인쇄물 마감 당일까지 수정을 반복하고 검수까지 시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힘들고 지쳐갈 때면 국장님이나 가연활동가님께서 건네주시는 달달한 돌체라떼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행복감을 잠시나마 주었습니다. 아마 그 순간이 없었다면 제가 이 대회준비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제가 서툴고 일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실수도 있었지만 다들 격려와 함께 해결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대회 전날까지 참가자와 자원봉사자들의 인원 변동은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 것은 누구 한 사람만의 작업들이 나누어져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가 도와가며 각자의 시간을 함께 나누며 쉼 없이 달려서 만들어 낸 또 다른 마라톤이었습니다.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제게 또 다른 소중한 경험들의 기회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인권도시포럼>이었습니다. 광주에서 해마다 열렸었지만 코로나 19로 3년 만에 ‘기후위기’를 주제로 대면으로 열린 ‘세계인권도시포럼’에 참석하여 다양한 지역, 나이, 분야의 활동가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만남이 아닌 멀리서 바라본 분들이라 본 것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20대 청년의 열정, 오랜 인권활동을 통해 쌓인 묵직하고 진한 목소리 등은 묘한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나의 20대는?’,‘지금의 나는?’ 등 참 묘하게 나의 과거를 다시 들춰보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SPC계열 불매운동입니다. SPC제빵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소식을 접하고 여러 시민단체들과 함께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SPC계열 불매운동에 동참해 주실 것을 동네 시민들께 알리는 활동 중에 만난 몇몇 분들은 “왜 이런 걸 하나요?”, “추운데.” 또는 “불매운동해야지! 정신 차려야지.” 등 그들의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직접 제 주변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이러한 활동으로 우리 동네에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던 시간도 되지 않았을까?

인권마라톤대회 준비를 함께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 네 분만으로 정말 대회가 열릴 수 있을까?’ 였습니다.
정말 대회 준비하시는 인원은 사무국 활동가분들 밖에 없으신 건가?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다 준비하지? 준비한다고 하지만 대회 땐 더 넓고 많은 곳에서 운영이 진행되는데 어떻게 하시지? 저는 준비과정뿐 아니라 대회 날에도 이분들만으로 어떻게 진행하실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대회날 평소에 뵙지 못하였던 울산인권운동연대 회원분들이 십시일반 대회진행에 참여해 주시기 위해 오셨을 땐 ‘아~! 울산인권운동연대가 20여 년을 올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묵묵히 지지해 주시는 회원분들이 함께 계셔서이구나. 필요할 땐 그들의 손을 내밀어 주시는 이 분들이 계셔서 우리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언제나 씩씩하게 새로운 발을 내디딜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권마라톤대회에서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면서 우리가 말하는 ‘혐오, 차별 없는 세상 ’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우리 아들들은 저랑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운동이든 공부든 일이든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우위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대회는 처음에 들어오든 마지막으로 들어오든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하프마라톤 참가자분이 부상으로 포기할 수도 있으셨지만, 동료 참가자분들과 진행요원분들이 페이스를 조절하며 결승점을 함께 통과하셨을 때 이분들이 진정한 승자이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분이 들어오실 때까지 기다려주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분들 그리고 결승점을 통과할 때 함께 기뻐해 주신 동료분들 이 모든 것이 우리 울산인권운동연대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인권마라톤이 끝나고 이렇게 다시 그때를 되짚어 보니 힘듦보다는 곳곳에서 웃을 수 있었던 순간, “두 번 다신 안 할거야. 못하겠어.”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던 담담함. 뭐라고 표현할 순 없지만, 나의 입가에 미소를 피우게 하는 이것은 무슨 마법일까?
아마 울산인권연대 활동가님들은 “내년엔 인권마라톤 없어~!!!”라고 소리치시면서 내년에도 11월 첫째 주 일요일엔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를 위해 울산인권마라톤이 열리겠지요?
내일은 울산인권마라톤코스를 걸어봐야겠습니다.

※ 손현정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교육센터 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