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1-07 18:20
[166호] 시선 - 염치(廉恥)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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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廉恥)

김창원


불쑥 내뱉는 말을 곱십어 볼 때가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뱉어내고는 ‘왜 그런 말을 했지?’ 돌아봅니다. 이유를 찾아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어렴풋이 ‘이것 때문인가?’라고 추정해보다가 덮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무의식은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가 나의 입(몸)을 통해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 잡았던 것들입니다. 정체성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언론에 거론되는 정치인들의 말들을 보면 무의식중(?)에 나온 말들이 많아 보입니다. 논란이 되면 ‘혼잣말’이었다고 해명합니다. 어떤 이는 ‘그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기도 하구요.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는 이들은 의식적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목적의식적으로 단어를 배치하고 사용한 것이겠지요. 스스로 준비한 발언이니 잘못을 찾을 수 없고, ‘뭐가 잘못이냐?’고 역성을 내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혼잣말’은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 잡았던 무언가가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겠지요. 그 사람의 내면(세계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반복된 학습과정을 통해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식적 발언보다 무의식적 발언은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국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속성(세계관)은 중요합니다. 국민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혼잣말’이었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혼잣말이었다고 해도 공공의 장소에서 공인이 한 발언이 언론에 보도까지 되었습니다. 이미 ‘혼잣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발 더 나아가 상대의 잘못(또는 실수)을 지적하며 공격까지 합니다. 정치인은 지지 세력이 있습니다. 지지 세력은 이를 옹호하고 적극 방어에 나섭니다. 결국 세력 대 세력 싸움이 벌어지고 감정대결로 치달립니다. 사건 자체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사라지고 ‘누구의 편인가?’로 나뉘어 진영대결로 빠져듭니다.

나의 말이 상대방에게 불편을 주었다면,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표현을 했다면 사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말을 할 때는 누군가가 들으라고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혼잣말이든, 목적의식적으로 한 말이든. 실수 또는 잘못을 알고,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는 사회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고치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염치’입니다. ‘체면을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입니다.

중용(中庸)편에는 ‘부끄러움(수치)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까워지는 것’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염치가 있어야 용기가 생기고, 용기가 있어야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맹자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염치를 몰라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현들은 ‘부끄러움(수치심)을 아는 것(知恥)에서 인간의 도리가 비롯된다(예의염치(禮儀廉恥)’고 했습니다.

일제식민지 시절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이었던 박상진 의사는 ‘염치(廉恥)없는 사회는 결코 정의(正義)로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살하려한 청년에게 사비를 털어 위로하며 판결문으로 세상에 울림을 준 박주영 판사는 ‘나를 가장 똑바로 서게 하는 것은 염치(廉恥’라고 했습니다. ‘염치(廉恥)’가 있어야겠습니다.

※ 김창원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