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1-07 18:28
[166호] 여는 글 - 기억되지 못해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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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못해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

이선이


다들, 날짜로 기억되는 인생의 몇몇 장면들이 있으시겠지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날’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너무 선명한 기억들.

저에게는 ‘5월 16일’이 그런 날입니다. 2008년 5월 16일. 첫 아이를 낳은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라 출산휴가 중이었습니다. 그 일이 없었다면, 다른 날과 다를 것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지요.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백이 형이 죽었대.”라고 겨우 말을 꺼내고는 곧이어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황망한 마음으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를 데리고 무작정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저뿐 아니라 소식을 들은 변우백의 친구들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학생운동을 함께 하고,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 그 무렵에는 각자 조금씩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친구였던 친구들. 두산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면서 여전히 노동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변우백에게 마음의 빚이 있던 친구들. 그 친구들은 변우백의 장례를 치른 후에도 노동부와 두산중공업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청계천 전태일 다리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49재를 지내고, 원청인 두산중공업을 처벌해달라고 릴레이 탄원서를 넣었습니다.

변우백은 근무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뒤에 오던 지게차에 치어 숨졌습니다. 자재를 가득 쌓은 채로 지게차를 운전하다 보니 시야가 가려서 앞에 가던 사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10미터도 넘게 끌려갔다고 합니다. 신호수가 배치되어 있었다면 당연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낸 지게차 운전자는 다른 하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원청의 공장 안에 여러 하청업체들이 뒤섞여 일하고 있다면 작업장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히 원청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결국 두산중공업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매년 5월 16일 즈음이 되면 변우백의 친구들이 양산 하늘공원에 모여 기일을 챙깁니다. 벌써 15년 가까이 되었으니 이제는 울지도 않고, 환하게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5주기 때 추모공원 마당에 심어놓은 작은 나무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정 속 변우백은 여전히 서른 다섯 젊은 청년이어서, 우리가 60살, 70살이 되어도 여전히 변우백은 서른 다섯 해 밖에 살지 못한 가여운 사람이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날짜로 기억되는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날의 풍경, 그날의 말, 그날의 원통함, 그날의 분노. 그날은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하루치의 삶이고, 그 하루치의 삶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 전부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감히 제가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故 김용균님의 어머니 김미숙님의 2018년 12월 11일도 그런 날이겠지요. 평범한 엄마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미숙님은 그날의 일을 겪으면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섰고, 지금은 김용균재단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김용균재단에서 만든 첫 번째 책 [김용균, 김용균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들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되지 않았기 때문에’ 잊혀지지도 않는다. 아예 기억조차 된 바가 없으니, 잊혀지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무수한 죽음들. 아니 무수한 삶들. 그래서 ‘김용균, 김용균들’이라고 책의 제목을 정하셨나 봅니다. 기억된 김용균도 있지만, 기억되지도 못한 수많은 다른 노동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그들 모두 또 다른 김용균, 김용균들이라고.

파리바게뜨 빵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 친구들에게 닥친 ‘그날’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잊혀지는 날이 올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치열하게, 집요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그 노동자는 저에게는 또 다른 변우백이고, 김미숙님에게는 또 다른 김용균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들은 또 다른 나의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아니 나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해주세요. 그래야만 나중에 ‘잊을’ 자격도 생깁니다.

※ 이선이 님은 민주노총법률원 울산사무소와 인권교육센터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