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1-30 12:05
[157호] 시선 하나 - 어촌마을 주민들의 삶과 인권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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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마을 주민들의 삶과 인권

이승진


평동어촌계(울주군 서생면)가 울산광역시의 「2021 지역사회 문제해결 사회혁신 리빙랩」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삶과 욕구를 조사했다. 65세 내외 주민 2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마을 고령층 주민들에게서 고혈압과 관절질환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대부분 혈압약과 위장약, 두통약, 진통제 등을 복용하고 있었다. 국민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 민간실비보험 등을 통해 잦은 병원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돈 벌어서 병원 가져다 준다”고 말 할 만큼 빈도수가 높다.

약물 오남용과 함께 급성기질환이나 만성질환의 경우 중복되는 약물이나 약물 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과잉진료도 의심된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무통주사와 물리치료로 버티는 비중도 높게 나타났다. 그나마 마을 인근에는 병원이나 의원, 약국마저 없어서 40분마다 한 대 씩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온양읍이나 온산읍까지 왕래해야 한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부산광역시 마을버스를 타고 기장군에 있는 병·의원에 다니는 경우도 확인했다. 버스를 놓치면 정류장에서 속절없이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몸이 잠깐 불편하면 자녀들에게 의지하지만 돌봄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때는 그럴 수도 없었다. 정보도 부족하지만 요구되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서생면에는 방문요양기관도 없다. 요양사업이 돈벌이로 인식되면서 거리가 멀고, 인구가 적은 지역에는 아예 들어오질 않는 것이다. 국가가 요양사업을 민간에게 맡겨 둔 결과다.

노후 대책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와 희망도 가지기 어렵다고 밝혔다. 소득보장 정책이나 노인 정책, 각종 사회서비스에 대한 정보도 접하기 어려웠다. 고령층 주민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경우 문맹으로 인해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흔한 편의점과 슈퍼마켓조차 없어서 생필품을 구하기도 어렵다. 전복이나 돌미역, 성게알을 자녀들에게 보내려 해도 택배 보내는 과정이 복잡하다. 글을 모르니 쇼핑은 고사하고 은행이나 행정복지센터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이런 문제들이 평동마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대개의 농산어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가에서 저출생 고령화에 대한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농산어촌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 서생면의 유일한 복지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생지역아동센터’의 센터장은 스물아홉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함께 마을 노인들의 행정업무까지 대행해주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와 지자체로 대변되는 국가의 의무와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이 분들에게 인권을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현실들을 확인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평동마을 어촌계가 스스로 해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어촌계 건물 일부를 할애해서 복지와 보건·의료, 주거, 교육 등 미흡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마을 안에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별도로 ‘노노케어사업단’을 발족해서 고령층 주민들이 서로 돌보는 사업을 통해 공동체성을 높이고, 노동의 대가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요양보호사가 아님에도 이미 요양보호사 업무를 해왔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해주자는 것이다.

행정복지센터와 우체국(택배) 등 접근성이 취약한 행정서비스 지원 체계도 구축한다. 특산품인 전복과 돌미역, 성게알을 포장·판매하는 ‘어촌형 6차산업’을 활성화해서 마을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수익의 일부는 모든 주민들에게 ‘마을기본소득’으로 지급하겠다고 한다.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방문 요양서비스와 방문 간호서비스도 통합해서 제공하겠다고 한다. 생필품을 구매하거나 구매 대행할 수 있는 마켓기능도 연계하겠다고 한다.

나는 공공과 민간을 연계하는 ‘울산민관협치지원센터’의 일원으로 평동마을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마을형 민관협치’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함께 찾아가고 있다. 인권에 대한 해석과 범위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 규정해 놓은 내용만을 인권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어촌마을 주민들에게 인권은 무엇일까?

환경파괴와 해양생태계 변화로 수산물 수확과 상품의 질이 떨어진다면, 10살이 되던 해부터 글도 배우지 못하고 물질을 시작해서 83세에 이른 사람에게, 그 나이가 되도록 물질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국가의 복지체계가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지와 인권과 해양생태계 파괴는 어떻게 이해될까? 누군가에게 인권 역시 그림의 떡으로 여겨질 수 있다.

※ 이승진 님은 울산민관협치지원센터 마을혁신연구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