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30 12:16
[172호] 시선 하나 - 말, 그리고 ‘말’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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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리고 ‘말’

김창원


어느 날 한 사람이 푸줏간으로 들어오더니 뒷짐을 지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한마디 합니다. “야 돌쇠놈아! 고기 두 근만 팔거라”.
돌쇠는 아무 말 없이 고기 두 근을 잘라 새끼줄에 묶어 전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푸줏간을 나서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들어서더니 “여보게 돌쇠! 고기 두 근만 팔게나”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돌쇠는 고기 두 근 반을 싹둑 잘라 새끼줄에 묶어 전합니다.
이를 본 앞사람이 당연히 돌쇠에게 화를 내면서 말합니다.
“이놈아! 왜 저 사람보다 내 것이 적은 것이냐?” 그러자 돌쇠가 말합니다.
“손님에게는 돌쇠놈이 고기를 팔았고, 뒤에 분 고기는 돌쇠가 판 고기입니다.”
돌쇠놈이 판 고기와 돌쇠가 판 고기는 다르다는 것이죠.

“설마 진심 어린 사과 뭐 그런 거 받자고 이러는 거 아니지? 낼 모레 40에 그건 너무 동화잖아, 동은아.”
“네가 뭘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네 인생이 나 때문에 지옥이라고? 하…. ji ral하지 마. 네 인생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지옥이었잖아. 넌 외려 나한테 감사해야 돼. 내 덕에 선생도 되고, 이 악물고 팔자 바꿀 동기 만들어준 게 죄야? 용서? 누가 누굴?”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반영되었던 ‘더 글로리’의 학교폭력 가해자 박연진이 성인이 되어 나타난 피해자 문동은에게 했던 말들입니다.
“네가 표혜교냐?”. “너 드라마 복 뽕차서 이러는 거지.”
“드라마 보고 선 넘는다는 말이 너무 많아.”
“나는 기억도 잘 안 나는 네 학창시절 때문에 불행해 하지 마. 불행탈출은 지능 순이라는데 우리 스물여덟이나 됐잖아!”
얼마 전 MBC 실화 탐사대가 보도했던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 표예림씨에게 보냈던 카톡문자 등입니다.

“어떤 점을 사과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특정인들에 대해 조롱이나 폄훼를 한 일도 없다.”
“사과를 해야 한다면 뭘 사과해야 하는지가 규명돼야 한다.”
“유족이나 피해자 단체가 내 발언의 취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집권여당 최고의원이 4.3사건과 관련한 발언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사과를 요구하는 흐름이 있자 보였던 반응입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더 깊다”는 모르코 속담이 있습니다. 말로 인한 상처가 더 아프고 오래 간다는 뜻입니다. 칼로 입은 상처는 피부에 남아있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가슴에 남기 때문이겠지요.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은 대부분 권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위나 권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므로 자신은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잘못했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은 그 자체가 권력이자 무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잘못했다면 그에 대한 사과는 더 겸손하고 숙고하고 더 진솔해야 합니다. “힘센 곰은 쓸개를 자랑하다 죽고, 힘센 사람은 혀를 잘 못 놀려 죽는다”고 했습니다.

‘버릇’은 익숙해지고 굳어진 행동이나 성질입니다. 그러니 ‘말버릇’은 습관입니다. 습관은 그 사람의 성질입니다. 사람의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말도 습관이니 ‘말’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가 배어있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위력적인 도구가 ‘말’이기 때문인데요. 말은 자신의 생각, 입장, 처지, 사상 등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생애가 담기고 인격이 배어있습니다. 말에도 품격이 있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상처 입은 사람에게 또다시 상처 주는 말에는 품격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놀리기 위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농담이라곤 하지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입에서 나온 순간 바로 튀어나가 상대방에게 전달됩니다. 이미 상처를 입힌 상태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습니다. 상처가 깊지 않은지 상대방은 웃으며 넘어갈 때도 있지만, 나에게 새겨진 상처는 쉬 아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이 숫자가 더해지는 만큼 말한다는 것이 더 힘들어집니다.

※ 김창원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