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7-27 10:02
[175호] 이달의 인권도서 -『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저(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2022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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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저(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2022 / 정리 : 오문완


저자는 이 책 14쪽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재미있게 소개 한다: [잡지 『아에라』(AERA) 2021년 1월 18일 호에 한 기사가 실렸다. 자칫 불편할 수 있는 그 기사는 「‘귀멸의 칼날’ 흥행의 이면: 늘어나는 배속·다른 일 하면서 보기·분량감소」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 글에서 영화를 원래 속도로 보지 못하는 남성(만 37세)이 소개되었다.

그 남성은 “빨리 감기로 보면서, 대화를 나누지 않거나 풍경만 나오는 장면은 건너뛴다”라고 말했다. 같은 기사에서 또 다른 여성(만 48세)은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시청할 때 ‘주인공과 관련 없는 장면은 관심이 없어서’ 빨리 감기로 돌려서 보았다”라고 했다. 이 기사는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나 역시 과거에 빨리 감기에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일 때문에 – 생략)

저자는 그 후 다양한 취재를 바탕으로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출현이 시사하는 무서운 미래」라는 칼럼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후속 작업이 이 책이다. 저자는 “빨리 감기”라는 현상 속에 세 가지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 봐야 할 작품이 너무 많아졌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를 이용하면 매달 만 원 내외의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만큼’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그 양은 어마어마하다.
둘째로, ‘시간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요즘 사람들은 영상을 효율적으로 ‘섭취’하기 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빠르게 알고 싶어 하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장면은 건너뛴다. 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00가지 비밀>류의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셋째로, 영상 제작 및 연출 자체가 쉽고 친절해졌다. 배우의 표정과 배경 소개로 은근히 표현할 수 있는 상황도 모두 대사로 전달한다. 그러니 대사가 나오지 않는 장면들은 모두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거리낌 없이 건너뛰거나 빨리 감기로 본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속에는 OTT의 탄생, 경기 침체로 인한 효율성 추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다는 ‘개성’의 족쇄, SNS로 24시간 공감을 강요당하는 분위기 등이 있었다. 효율을 강조하는 사회 속에서 ‘치트키’를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실패하면 안 된다’라는 압박 속에서 Z세대의 행동 양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모든 거대한 사회적 변화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 ‘빨리 감기’(배속), ‘건너뛰기’(스킵), ‘패스트무비’(몰아보기) 현상이었다.
이런 현상이 세대 차이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즉, 모든 세대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다만, Z세대에서 두드러지는 건 분명하다. 남들과 다르고 싶은 Z세대의 뿌리 깊은 욕구(114쪽) 때문이다. Z세대의 특성은 이렇단다.(115쪽)

① SNS를 잘 활용한다.
② 돈을 많이 쓰는 데는 소극적이다.
③ 물질 소비보다 경험 소비를 중시한다.
④ 학교나 회사와의 관계보다 친구 등 개인 간의 관계를 중시한다.
⑤ 기업이 계획한 트렌드나 브랜드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이 추천하는’ 것을 우선한다.
⑥ 안정, 현상 유지를 지향하며 출세욕이 적다.
⑦ 사회공헌을 지향한다.
⑧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한다.

이를 통해 왜 빨리 감기 기능이나 10초 건너뛰기 기능이 자주 사용되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①, ④, ⑤에서는 메신저에서의 공감 강제력이, ②, ③에서는 DVD나 CD를 비롯한 패키지 콘텐츠를 소유하기보다 구독으로 해결하려는 기질이 연상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꼭 찬동하는 건 아니다. 책 15-16쪽에 이런 경험을 소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빨리 감기로 한 번 더 시청했던 작품을 다시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느낌이 전혀 달랐다. 처음 보는 작품을 빠른 속도로 보았으니, 그 묘미를(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 의견이지만) 절반도 맛보지 못했던 것 같다.
스토리는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볼거리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인물이 보여주는 세세한 감정의 변화, 대화를 통해 배어 나오는 캐릭터, 인물 간 관계성, 미술과 소도구, 로케이션 현장의 아름다움, 연출의 리듬과 생생한 분위기를 충분히 맛보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당시에는 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대사 없이 흘러가는 10초간의 장면에는 ‘10초간의 침묵’이라는 연출 의도가 있다. 침묵에서 비롯된 어색함, 긴장감, 생각에 잠긴 배우의 표정은 모두 만든 이가 의도한 연출이다. 그렇기에 그 장면은 9초도 11초도 아닌, 10초여야 한다.
누구도 좋은 음악을 빨리 감기로 듣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런 행위를 아티스트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영상을 1.5배속으로 시청하거나 대화가 없고 움직임이 적은 장면을 주저 없이 10초씩 건너뛰어 시청하는 사람은 많다. 비단 과거의 나처럼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만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