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3학년 2학기」가 되기를...
- 2025 울산인권영화상영회 소감문 -
김원선
가입되어있는 산재 단톡에 2025년 7월 17일 울주의 탱크세척 사업장에서 탱크 내 작업 중 유기용제 중독 사망사고로 중대재해 발생 알림이 떴다. 같은 날 대전의 한 제지회사에서도 작업 중 추락사 재해자가 발생했고, 7월 7일 구미의 아파트 현장에서 젊은 베트남인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앉은 채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6월 27일 평택 반도체공장 공사현장에서 추락사, 6월 23일 울산 양극재 신축공장에서 추락사, 6월 21일 울산 화학물질 사업장에서 세척제 피부 노출로 치료 중 재해자 사망 등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사고 소식이 연이으면서 영화와 오버랩 되어 마음 한 켠이 편치만은 않았다.
영화 「3학년 2학기」는 대학 입시 준비가 아닌 현장실습이라는 삶의 전선으로 내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우리는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교과서보다 더 냉혹한 현실을 배우는 청소년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 창우는 친구 우재와 함께 중소기업 현장실습을 통해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고 열악한 노동 환경, 무거운 책임, 그리고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합리한 하루하루를 적응해간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그들의 혼란, 좌절을 바라보며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실제 어딘가에 살고 있을 누군가의 오늘을 그대로 옮겨놓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창우처럼 누군가는 학교라는 의무조차 부담이 되는 삶 속에서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여야 하는 이들의, 선택이 아닌 생존의 이야기를 영화는 애써 비극적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창우가 공장에서 다치는 장면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극장 안에서는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관객 모두가 ‘혹시 다음 소희 같은 일이 또 벌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그러나 순간 그 놀라는 마음조차 왠지 미안해졌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위험이 ‘일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수호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사람이 일하다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는 다혜의 독백은 단순한 무지에서 나온 말이라기보단 어쩌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느끼는 깊은 상실로 고스란히 전달됐고 회사를 찾아온 노무사에게 친구를 위해 문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성민이의 용기엔 응원보단 안타까움이 먼저 들기도 했다. 그 용기를 낼 수 있는 조건이 결국 퇴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만약 그에게도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다면 성민이는 과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는 영화 너머의 세상,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고 수능 응원 현수막이 걸린 거리에서 소외감을 느꼈을 또 다른 청소년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행사 진행자의 멘트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나 역시 다시 곱십어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나 세상을 바라볼 때 좀 더 민감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 국민이 수능에 올인하는 시대에서 수능 응원 현수막으로 인한 소외감은 비단 특성화고 청소년들만 느끼는 비애는 아닐거란 생각도 들었다. 수시, 정시만으로 원하는 대학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또는 형편상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대학을 나와도 취업할 곳을 찾지 못한 청년들에게도 그들의 가족까지도 같은 무게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되기도 했다.
영화 중간중간 창우의 기타 연주 장면이 나온다. 처음엔 무슨 곡인가 싶어 귀를 기울여야만 했던 어설펐던 손놀림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무조건 성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학교에서 느린 학습자들을 위해 지원하는 것처럼 적응이 느린 청소년, 청년들에게 조금 더 천천히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허락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램이 감독의 연출 의도와 일맥상통하였기를 바래본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영화 관람과 진솔한 문답들이 오고가면서 다시 한번 교육과 우리 사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겪는 차별과 무관심, 그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문제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찾으라고 하지만 정작 안전하고 존중받는 일터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영화 「3학년 2학기」는 마치 사회라는 어두운 교실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수업 같았다. 그 수업을 통해 나는 청소년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성장 서사를 넘어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어른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오늘도 끊임없이 살아내는 중인 모든 청소년들에게 마음속 깊은 응원을 보낸다. 그들에게 우재처럼 티 없이 해맑아도 괜찮다고 너희들은 아직 그래도 되는 나이라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함께 영화를 보고 같은 고민을 갖는 분들에게 이렇게 이쁜 우리 아이들에게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고 채근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잠시 쉬어도,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잘못해도 실패해도 괜찮다고 응원해 주고 함께 걸어주는 선배시민이 되어 주시기를 감히 제언해 본다.
※ 김원선 님은 울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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