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7-30 13:20
[151호] 시선 둘 - <태양을 덮다> 영화 관람 후기 - 누군가의 희생위에 서있는 삶 -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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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덮다> 영화 관람 후기
- 누군가의 희생위에 서있는 삶 -

김창원



아침 출근하자마자 노명래 소방사의 영결식장으로 갔다. 묵념의 시간, 고인의 명복(冥福)을 빌었다. 부디 저승에서는 화마의 고통에서 벗어나 활짝 웃으시라고... 울부짖는 아버님의 아픔을 달래주시라고.... 영결식이 끝나고 개인들에게 헌화할 시간이 주어졌다. 길게 늘어선 줄 뒤로 다가갔다. 앞에는 119 구급대 요원 몇 분이 구급요원복을 입고 서 있었다. 119라는 글자가 새삼 크게 다가왔다. 국화꽃을 올리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힘써주신 그 마음에 감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후쿠시마의 기록을 담은 픽션드라마 “태양을 덮다”를 보는 자리!
핵발전소의 위험성보다 더 크게 내 머리와 가슴에 자리한 장면은 현장작업자들의 모습이었다.
우리 이대로 있는 게 맞냐며 질문을 던지고 가족들을 뒤로 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젊은이.
벤트작업을 앞두고, “젊은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지금은 아저씨들한테 맡기고 너희들은 대기한다.” 던 중년의 작업자.
‘목숨을 걸어 달라’는 정부의 요청 이전에 이미 자신들의 자리는 현장을 사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현장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 생각하고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
그들의 희생위에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일본은 올림픽 개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의 기억은 서서히 옅어져 가고 있다.

자문해본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지금 이 자리 역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서있는 자리마다에는 희생자의 아픔과 가족들의 고통이 배어 있을 것이다.

연속되는 폭발을 TV로 지켜보며 연결되지 않는 아들에게 전화를 계속하는 어머니의 모습 속에 두 팔을 치켜들며 “내 아들 명래야!”를 외치던 노명래 소방사의 아버지 모습이 겹쳐진다.

“어디로 가야 해? 어디로 가야 우리 아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건데?”라는 아내의 물음에 아무런 답을 못하는 기자 나베시마. 나 역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고 없는 시간, 재난 없는 공간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고, 어느 날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고, 어느 날 갑자기 태풍이 몰아치고, 어느 날 갑자기 해일이 덮쳐오고, 어느 날 갑자기 화학공단에 폭발이 일어나고, 어느 날 갑자기 고리와 월성에서 핵폭발 사고가 터지고....
그 순간순간마다 누군가는 현장으로 달려가고, 부상을 입고, 목숨을 잃는 사람도 생긴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누군가의 재산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그렇게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나는 누군가의 희생위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숙연해지고 고맙고 감사하다.


※ 김창원 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운영·편집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