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의 족쇄에 묶인 삶 그리고 영혼
박석운
1948년 12월 01일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 악법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치안유지법을 계승하여 제정되었는데, 심지어는 당시 <조선일보>조차 1948년 11월 14일 사설에서 “대한민국의 전도를 위해서나 우리 국민의 정치적 사상적 교양과 그 자주적 훈련을 위하여 크게 우려할 악법이 될 것을 국회 제공에게 경고코자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국가보안법은 ‘정권 안보법’으로 작동되었다.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평화통일론을 주창한 조봉암 후보가 이승만 후보에 이어 2위를 하자, 이승만 독재정권은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시켰다(2011년 1월 대법원, 재심판결에서 무죄 선고). 또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일당이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난 뒤, (나중에 대통령이 된) 김대중 선생을 그 배후조종자로 몰아 군사 법정에서 사형선고했던 것도 국가보안법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국가보안법은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해낸 ‘반인권 악법’이다. 1973년 10월 중앙정보부는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를 고문 살해하고는 자살로 사인을 허위조작하였다(2006년 2월 서울고법, 국가의 불법행위 인정, 국가배상 선고). 또 1975년 4월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를 고문으로 조작해 인혁당 관련자 8명을 사형 집행하였다(2005년 12월 대법원, 재심판결에서 무죄 선고). 그리고 1970~80년대에는 수많은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들을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하여 처벌하였다(대법원에서 재심 거쳐 무죄 판결된 사례 다수). 최근인 2013년에도 탈북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는데,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증거까지 조작한 사실이 들통나서 무죄 선고되기도 하였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양심?사상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훼손시키는 ‘반민주 악법’이다. 남과 북의 ‘모내기’ 장면을 그린 신학철 화백이나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비판한 ‘오적’ 시를 쓴 김지하 시인 등도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8억 인과의 대화> 등 빛나는 저작을 통해 냉전 논리를 비판했던 리영희 교수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처벌되는 등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한승헌 변호사도 1972년 9월 <여성동아>에 ‘어느 사형수의 죽음 앞에서―어떤 조사’라는 수필을 기고하였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한동안 변호사 활동을 못 하기도 하였다.
문화예술인이나 언론인, 지식인들만 국가보안법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민초들이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한 말꼬리를 잡아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했던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 사례 또한 매우 심각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국민이 의사 표현을 할 때마다 먼저 자기 검열하는 상황이 내재화?일상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줄기차게 권고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1992년, 1999년, 2005년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고,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국제앰네스티 등도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또 국가보안법은 ‘반평화 악법’이다. 1971년 유엔에 남북한 동시 가입과 북한의 실체 인정을 주장했다가 구속된 통일사회당 김철 위원장이나 <세대>지 1964년 11월호에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주장하는 사설을 게재했다가 구속된 황용주 문화방송 사장 사건도 있었다. 그렇게 무리하게 탄압하였지만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고, 촛불 항쟁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이제 지난 73년간의 기나긴 족쇄,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을 벗어던지고 민주주의와 평화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10만인 입법청원’이 5월 10일 시작되어 9일째가 되는 5월 19일 10만 입법청원이 달성되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달성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구시대의 악법이라는 것이 국민들속에서 광범위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입법청원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욱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나서 주셔야 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역사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날을 바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완성되는 날로 기록할 것이다.
※ 박석운 님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상임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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