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4-30 10:18
[148호] 이달의 인권도서-『 우한 일기』- 팡팡 저,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2020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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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 일기
-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팡팡 저,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2020 / 정리 : 한주희


# “비상사태가 닥치면 인간 본성에 내재한 거대한 선과 악이 전부 드러난다. 당신은 그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경악하고 탄식하고 분노하고, 그리고 익숙해질 것이다.”


이 코로나의 지옥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우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돕는다. 우한의 생존자들은 먹을 것을 이웃과 나누고, 최소 인원의 움직임으로 최대한 긴 기간 동안 버틸 수 있도록 생필품을 공동 구매한다. 전염병이 번진 이 참혹한 도시에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독거노인의 끼니를 염려하며 간장 뚜껑과 꿀 뚜껑을 열어주러 조심조심 문을 두드리는 이웃들이 있다. 텅 빈 거리에서도 환경미화원들은 거리를 쓸고, 의사와 간호사, 경찰들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한이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한다.
무엇보다도 저자 팡팡은 이 재난이 어디서, 왜 초래되었는지, 어떤 안일함과 무책임이 이런 엄청난 비극을 확산시켰는지를 알아내고자 한다. 팡팡은 이 코로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봉쇄 기간 내내 소리 높여 그들이 책임지고 사죄하고 물러날 것을 촉구한다. 이로 인해 『우한일기』에 지지 의사를 밝힌 학자들이 정부 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으며, 훗날 팡팡 자신도 고발당했다. 그러나 팡팡은 중국 내부에서의 탄압과 비판에 맞서 “작가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느낀 것을 진실하게 쓸 뿐이지 쇼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팡팡은 직급과 위치를 막론하고 이 코로나 사태에 책임이 있지만, 고개 돌렸던 자들을 향해 끝까지 책임을 추궁한다. 그들이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핑계를 남발하며, 목숨을 잃은 수천 명의 우한 시민들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면 또 다른 재난이 도래했을 때, 우한은 똑같이 무사 안일한 대처로 더 큰 재난에 맞닥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한의 바이러스 기세가 서서히 꺾여갈 무렵, 돌연 팡팡은 중국의 긍정적인 면을 세계에 내보이지 않고, 부끄럽고 왜곡된 면을 알리는 ‘매국노’ 작가라며, 일부 네티즌들과 극단적인 지식인들의 맹공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팡팡은 봉쇄일기를 멈추지 않는다. 쓰레기차에 식재료를 실어다주는 공무원들의 무신경과 몰상식에 분노하고,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완승(完勝)했다’며 억울한 망자들의 혼이 아직 이승을 채 떠나지도 못했을 우한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일부 작가들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 코로나19의 비극은 인재(人災)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세계가 한 일, 그리고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하여

중국에서 중난산 원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한 의료진 사망과 사람 간 전염을 인정한 것은 2020년 1월 20일의 일이었다. 그러나 12월 말부터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는 ‘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의문의 폐렴 환자들이 대거 발생하고 있었다. 리원량 같은 의사들이 심상치 않은 전염병의 기미를 감지하고 세상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저지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은 이러했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人不傳人 可控可防).”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촉발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20여 일, 의사 리원량이 ‘괴담 유포’ 혐의로 당국에 끌려가 반성문을 써야 했던 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팡팡은 이 악성 바이러스를 얕보고 알량하게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은폐한 이들을 향해 외친다.
“코로나19 창궐 초기 중국 정부의 안이한 대응, 그리고 신종 바이러스와 싸우는 중국의 경험에 대해 불신하고 경멸한 서구권 국가의 오만함으로 인해 인류 전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이것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이다. 베이징의 중난하이 지도부의 안뜰에서도, 백악관 복도에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시대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인구 천만의 도시가 갑자기 봉쇄되었을 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는지, 또 어려움을 돌파하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우한에서도 코로나 발생 초창기에는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개인이 마트에 나가는 정도는 허용되었다. 그러나 이내 허가받지 않은 개인은 아예 거리로 나서지 못하게 되고, 아파트 단지나 마을 입구에서 공동구매 대표자가 사 온 생필품을 분배받게 된다. 그러나 이내 집 문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서면 안 되는 혹독한 제재가 뒤따른다. 이때 우한 사람들은 밧줄에 서로 필요한 물건을 매어서 창문으로 넘겨주고 넘겨받는다. 어쩌다 당장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식료품을 구하면 조용히 이웃의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들은 ‘사랑의 채소’를 만들어 우한 인민들에게 나누어준다.

한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지만, 정부 당국으로부터 처벌만 받은 우한시 중신병원의 의사 리원량이 결국 그 자신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자, 우한에는 애끓는 애도의 물결이 흐른다. 리원량이 그러했듯, 팡팡의 일기도 우한 사람들에게는 봉쇄된 도시의 산소 호흡기였고, 희망과 연대를 독려하는 호루라기였다.
지금 우리나라도 코로나19와 절체절명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모두가 힘을 합쳐 한 도시를 지독한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사람의 것으로 되찾아오고자 하는 우한 사람들의 76일간의 투쟁은 눈물겹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바이러스는 인류 공동의 적이다.” 그리고 팡팡은 이렇게 덧붙인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적은 우리 안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