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5-28 15:58
[54호] 회원글 - 군인과 성적자기결정권, 그리고 역행!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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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과 성적자기결정권, 그리고 역행!

윤경일 l 회원


4월 19일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할 근거와 처벌대상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군형법 일부 개정안을 군사법원장 출신인 민홍철 민주통합당 의원이 의원들 공동으로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군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는 '추행죄'인데, 이를 '동성 간의 간음죄'로 명칭을 바꾸고 처벌대상에 항문성교뿐만 아니라 구강성교, 기타 유사성행위 등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하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강제 추행한 사람뿐만 아니라 합의 하에 동성 성행위를 한 사람들도 처벌받게 된다. 민 의원은 또 “‘계간(鷄姦)’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남자들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이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취지를 반영하려면 군대 내 남성 간의 ‘항문성교’ 뿐 아니라 ‘여성들 간의 유사 성행위’도 처벌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민 의원은 “동성애 행위 처벌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있다. ‘성 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러나 헌법재판소도 ‘군대에서까지 이를 허용할 경우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므로 그 처벌이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2011년 3월 31일 결정(2008헌가21)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현재 국방부훈령으로 적용되고 있는 ‘부대관리훈령’ 제6장은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군대 내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며, 동성애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지만, 290조제2항에서 동성애병사의 병영 내에서 모든 성적행위는 금지하고 이를 위반 시 형사처벌 및 징계를 하도록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흐름이 점차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고, 그 19일 당일에는 세계 14번째로 프랑스에서 일부 종교단체 등의 반대에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우리나라가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대쪽에 서 있다. 과연 사회적 재생산 때문에 만들어진 결혼제도에 동성애까지 끌어들일 필요성이 있는가, 서구사회처럼 ‘사회적 결합’정도로 법적인 효과를 인정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낫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희대의 이 ‘동성간음죄’가 발의되었는데, 이 낡은 법이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군기강 제고‘를 위해 군형법 제92조 6항이 존치돼야 한다는, 군 특수성이라는 사고에 갇혀 있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 호모포비아이며, 또한 동성애가 군기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검증된 바 없는 막연한 혐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7년 이경환 변호사의 ‘군내 내 동성애 행위 처벌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보면, 합의에 의한 동성 간의 성관계를 처벌한 것은 연 평균 1건 수준이며, 모두 기소유예나 선고유예 수준으로 처벌되었다고 한다.


한편 민 의원의 개정안 추진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단체들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평등권 침해, 과잉금지원칙 위반을 주장하며 즉각 반발에 나섰다.
논란이 일자 민 의원은 개정안의 ‘동성’이라는 단어를 모두 빼고, 모든 성행위를 처벌하는 쪽으로 개정안을 다시 만든다고 25일 밝혔다. ‘군내의 모든 성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꾸고, 개정안의 ‘동성간’, ‘동성간의 행위’라는 말을 모두 빼고 다시 다듬어서, 남-남의 관계, 여-여의 관계, 남-녀간 관계를 모두 포괄적으로 넣어 군 영내이거나 훈련 중인 외부 등지에서 하는 행위에 대해 모두 처벌하는 쪽으로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합의된 성관계’를 법으로 처벌하려다 계속 법적인 문제점을 낳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으로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과연 어떻게 규제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기에, 예를 들어 군 부부가 영내 어느 숙소에 있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은 처벌 대상인가? 그리고, 이는 군인이면 전투력 보존을 위해 결혼도 하지 말라는 논리나 같은 것이 아닌가!

시대는 변하고 변하여 2013년 6월 19일자로 군형법과 일반형법은 같이 강간 등의 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꿔, 남·녀 누구든지 남·녀를 위력에 의해 강제로 성관계를 하는 것은 처벌하도록 바뀌게 돼 있는데, 군대에서는 아직 구시대적 사고에 집착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려고만 하니 한심하기 까지 하다. 성행위로 군기가 문제가 된다면 내부 징계로 규율하는 것이 맞고, 형벌권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