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권 및 환경권으로 가늠해 보는 인권
이상범
길천산업단지에 아스콘 공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역 주민들과 사찰에서 들고 일어났다. 급기야 시청 앞에서 대규모 항의집회로 이어진 언론 보도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첫째는 이런 사태가 벌어진 이유를 찾아보니 행정기관의 명백한 잘못이라는 점, 둘째는 이런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인지했다는 자책감이다.
내가 살고있는 인근에 아스콘 공장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의 반발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산중 사찰에서 수행정진 하는 스님들까지 대거 집회에 동했다는 것은 그만큼 주민들에게 심각하고도 민감한 상황이라는 반증이다. 길천산업단지를 조성할 당시의 입주 조건으로는 아스콘 공장은 입주할 수가 없었다.
아스콘 공장에서 1급 발암물질을 배출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국 곳곳에서는 이미 들어와서 가동 중인 공장도 나가라는 판이다. 그런데 없던 아스콘 공장이 새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주민이 있을까? 그런데 중간에 입주 조건을 완화해 주어서 아스콘 공장이 들어오게 되었으니 사단을 자초한 셈이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길천산업단지를 조성 및 분양한 울산광역시에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을 들어 분양 조건을 완화 시켰다. 그리하여 아스콘 사업자는 길천산업단지의 부지를 분양받은 다음에 울주군에 아스콘 공장 건설 허가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아스콘 공장 입주 사실을 알게 된 인근 주민들과 사찰에서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과 인근 사찰에서 반대하니까 울주군은 건축허가를 불허했으나 아스콘 사업자 측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상식으로 보더라도 공장부지는 분양해 놓고, 건축허가는 불허했으니 울산시와 울주군의 조치는 모순된 행정으로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입주 조건을 완화 시키면서 입주 가능한 업종 범위를 제한적으로 확대한 것이 아니라, 입주할 수 없는 업종만 특정해서 제한하니까(네거티브 규제) 제한업종에 포함되지 않은 업종은 다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준 셈이다.
더욱이 아스콘 공장 이 들어올 부지와 가까운 거리에 사찰에서 운영하는 요양병원이 자리하고 있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쳐내는 꼴이다. 가지산 석남사와 고헌산 고헌사
등 천년고찰도 다 아스콘 공장에서 내뿜는 공해와 악취 영향권에 들어간다. 상북면 주민들뿐만 아니라 스님들까지도 시청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이유다.
귀책 사유가 있는 울산시가 결자해지를 해야 한다. 지금 상북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인권의 범주라 할 건강권과 환경권이라 할 수 있다. 범위를 더 확대하면 재산권과 생존권으로 이어진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면 자연 즉,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도 천부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각기 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모든 동식물의 생존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생물종다양성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생물종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 처음으로 울산의 지방정부 및 의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환경정책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길천산업단지 아스콘공장 갈등은 어쩌다 터져 나온 환경문제가 아니다. 업적으로 자랑하는 태화강 국가정원 2호 지정 그늘에는 생물종다양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따른다. 십리대숲을 백리대숲으로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반 자연적인가. 케이블카 건설을 안 하겠다던 입장이 하겠다로 바뀌었다. 미세먼지와 기후위기가 비상사태 수준인데 도시 허파 역할을 하면서 공해 차단녹지 역할을 하던 공단 내 녹지는 산업단지로, 야음근린공원은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을 추진한다. 이명박 정권이 인체의 대동맥에 해당되는 4대강을 망쳤다면 지금 이뤄지는 소하천 공사는 인체의 실핏줄, 즉 모세혈관을 망치고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을 보면서도 탈원전 정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길천산업단지 아스콘공장 갈등은 울산시의 환경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 시민의 건강권과 환경권에 대한 무개념이 누적된 결과다.
※ 이상범 님은 울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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