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9-30 16:15
[129호] 여는 글 - 희곡 한 편을 써 봅시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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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한 편을 써 봅시다

오문완



어느 날 아침.

(김 씨)
9월 울산대리구 아세미※가 9월 23일 옥동성당에서 있습니다. 총알배송 당일배송 새벽배송 등 우리 삶의 편리 이면에는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구조가 있습니다. 몇 주 전에는 추석을 앞둔 배송 노동자의 과로사도 있었지요. 소비편의와 유통구조로 희생되는 배송노동자의 현실과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오니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메일 보냄)
※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미사

(오 씨)
옥동성당에 확인 바랍니다. 옥동성당 주보에는 같은 시간에 <젠더 갈등과 폭력>에 관한 강의를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공연히 두(세?) 조직 간에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알려 드립니다.(메일에 답함)

(다시 김 씨)
관심 가져주시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님의 이메일을 보고 깜짝 놀라서 옥동성당 사무원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저희가 보내준 문구대로 '택배노동자의 현실과 인간의 존엄성'으로 주제가 실렸다고 합니다. 공문에 분명히 2주 게재를 요청하면서 문구를 보내줬는데요……혹시나 해서 인터넷 상에서 찾아보니, 9월 15일자 본당 주보란에 뜬금없이 9월 부산 아세미 주제를 실었더라고요.ㅠ.ㅜ~
본당에서 9/8일자 주보 알림에 게재된 부산아세미 내용을 보고 바꾼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9월22일자 주보에는 바로 실려 있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답 메일에 답함)

같은 날 저녁.
술자리에서 이 얘기가 오간다.

(이 씨)
(얘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화들짝 놀라며)
아니 성당에서 젠더 얘기를 한다고요. 어찌…
몇 년 전 도종환 시인이 와서 성당을 어수선하게 만들더니 또…

(정 씨)
택배 노동자 얘기를 하는 건 괜찮고…
사람들이 전혀 관심이 없을 텐데…
왜 이런 쓸 데 없는 일을…….

(심약한 오 씨)
……

성당 사람들 참 보수적이지요. 왜 그럴까요? 어느 분의 분석입니다. 종교라는 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통로이고, 이제 해소되었으니 현재의 삶을 즐겨야 한다, 그런데 현실을 바꾸려는 (어떠한) 시도는 미래를 불확실하게 하니 두렵다, 그래서 지금 것을 지키려고 한다.
충분히 있을 법한 담론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성당 다니는 사람으로만 구성돼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주 다종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곳이지요. 그래서 (마르틴 부버의 말마따나) 너에게서 나를 보는 겁니다. 보수적인 곳일수록 더 많은 강연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래야 남들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어느 책[애덤 벤포라도(강혜정 옮김), 언페어: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다, 세종서적, 2019]을 읽는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도덕적 세계의 활궁은 장대하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휜다.”는 말씀이 와 닿는군요. 구글을 돌려 원문을 찾아봅니다.
The arc of the moral universe is long, but it bends towards justice.
같은 책의 결론 부분(397쪽)은 언페어(Unfair)에서 페어(Fair)로의 자연스러운 흐름 또는 당위를 들려줍니다. “불공정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선조들에 비해 엄청난 이점들을 누리고 있다. 우리는 인간 행동에 대해 그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문제를 추적하고 대처하고 예방할 놀라운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수백만 대중에게 영향을 미칠 행동들을 조직할 강력해진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킹 목사의 말씀을 패러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휘어주지 않는 한 역사의 활궁은 정의를 향해 [저절로] 휘지 않는다.”
9월 18일 저녁 인권연대에서 이주민의 인권을 얘기했는데 ‘이주와 인권연구소’ 이한숙 소장의 마무리 말도 바로 이 얘기였습니다.

행동하라!!!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부설 인권연구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