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다시 싸워야 하는 이유
허창영
1980년 5?18이 다시 대한민국의 화두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영면해야 할 ‘오월 영령’들이 아직 봄이 채 오지 않은 광장으로 느닷없이 소환되었다. 역사적, 법적 평가가 끝났고, 처벌과 보상이 완료된 승리의 역사라는 안도를 몇 몇 사람들의 망언이 간단하게 흔들었다. 지만원은 “북한군 600명 침투설”이라는 소설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은 5?18을 “폭동” “5?18유공자는 괴물집단”이라는 망언으로 짓밟았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분노해 광장에 모였고, 여야 4당은 ‘역사부정죄’를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당사자인 자유한국당은 의외로 의연하다.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빠지는 현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극우세력을 결집시키는데 5?18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태극기부대를 중심으로 김진태를 연호하는 기막힌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하는 세력이 ‘정리된 역사, 승리의 역사’로 안도하고 있을 때, 극우의 망동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비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사실 엄밀하게 얘기해 5?18이 ‘정리되지 않은 역사’라는 점을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치열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었다는 이유에서, 또한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정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념’만 하면 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5?18은 진상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국가차원의 진상규명 보고서가 없다. 지난해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직 발포를 누가 명령했는지, 헬기사격이 있었는지조차 확인하는 공식 문서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지만원 같은 인물이 소설을 쓰고, “폭동”이라는 망언이 가능한 것이다.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본질에 대한 규명 없이 서둘러 과거를 ‘청산’하는 것에만 초점이 있었다. 그래서 5?18 유공자들에 대해서도 국가폭력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보상’으로 정리된 것이다.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되지 않은 5?18은 극우의 망동을 제어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싸움은 5?18을 부정하는 자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를 넘어 ‘진상규명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또 이번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발언이 ‘인권의 역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5?18은 국가기념일이 되면서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되기는 했으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민중항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고 학살과 무장투쟁의 현장이었던 5?18을 민주화운동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의 관점에서는 저항권과 자치권, 연대권 등을 실현한 ‘인권의 역사’였다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폭동”이라는 한 단어가 이러한 평가를 무색하게 하고 ‘광주사태’라고 부르던 그 시대로의 회귀를 강요하고 있다.
5?18은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비상계엄에 맞서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망 155명, 부상 후 사망 112명, 행방불명 82명, 부상 2,494명, 연행 및 구금 2,826명 등의 피해자를 만든 국가폭력의 무시무시한 민낯을 보았다. 그에 저항하기 위해 총을 든 것은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그 복종을 거부하거나 실력행사를 통해서 저항할 권리”로 정의되는 ‘저항권’의 행사이기도 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서도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시민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통해 자치공동체와 연대공동체를 실현하였다.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것이다. 5?18은 ‘폭동’이 아니라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시민의 저항권이 행사되었던, 자치권, 연대권이 실현되었던 자랑스러운 인권의 역사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부정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인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발언은 인권의 이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또 그들이 늘 주장하는 ‘폭력’에 대해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5?18은 시민들이 무장하였다는 이유로 늘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국가와 체제의 부당한 폭력, 즉 정당성을 결여한 폭력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서 행사되는 폭력은 부당한 폭력과 동일한 수준의 폭력이 아니라는 주장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물론 어떤 폭력이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권력을 가진 자의 폭력은 정당화되고, 이에 저항한 시민들의 폭력은 무조건 불법으로 규정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1997년 대법원이 5?18에 대한 판결을 하면서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 규정하였다는 점도 좋은 참고가 된다. 때문에 시민들의 저항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망동을 허용할 수 없다.
5?18에 대한 망언과 부정은 그냥 ‘정치놀음’으로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또한 5?18에 대한 폄훼는 광주나 전라도에 대한 부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끌어왔고 국가폭력에 맞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왔던 바로 우리들, 시민에 대한부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저항의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 허창영 님은 광주광역시교육청 민주인권교육센터
조사구제 팀장이며, 인권운동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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