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4-28 16:23
[65호] 회원 글? - 봄날은 갔다?
 글쓴이 : 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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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갔다?


송혜림 l 회 원

맞습니다, 영화와 시 그리고 노래로 유명한 봄날은 간다, 의 패러디 맞고요! 요즘 같은 봄날,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보는 박남준 시인의 ‘봄날은 갔네’, 지독한 그리움의 시인데요, 그 짝퉁 이기도 합니다. 보통 봄날은 간다 혹은 갔다 라고 하면,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갔다는 의미가 떠올려지는데요. 그 때가 좋았지...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그 과거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사랑 혹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어느 한 시절일 건데요, 영화 화양연화의 이미지와도 언뜻 겹쳐지지요.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어디론가 새나가고 덧 없고 속절 없다던, 김사인의 시 ‘화양연화’의 정조도 그런 류일 겁니다. 아마도 그건, 봄처럼 찬란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겠지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Midnight in Paris’에는 회고적 삶을 사는 젊은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사랑한다고 믿고 있으나 실제로는 사랑한 것이 아닌 아름다운 약혼녀와 파리로 여행을 가는데요, 파리는 비 오는 저녁이 아름답다며 비 오는 거리를 산책하자는 이 남자를 남겨놓고, 약혼녀는 머리 망가지고 옷 버릴 걱정을 하며 택시를 타고 가 버립니다. 혼자 비 오는 파리거리를 걷던 남자에게, 자정 무렵, 아주 고전적인 클래식 푸조 자동차가 다가오고, 엉겁결에 타게 되는데요. 그 안에서 해밍웨이를 만나지요. 즉 1920년대로 돌아간 겁니다.
해밍웨이를 따라 간 곳에서 피카소도 만나고 ‘위대한 갯츠비’를 쓴 피츠재럴드 부부도 만납니다. 또 운명적으로 피카소의 애인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그녀와 늦은 밤 산책하다, 또 다른 시대, 1890년대로 다시 넘어갑니다. 그 곳에서 이 여인은, 1920년대는 너무 소란스러워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이 1890년대가 낭만적이고 좋으니 이 곳에 머물자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야말로 시끄럽고 치열하고 경쟁적인 21세기로부터 1920년대를 거쳐, 1890년대까지 오게 된 이 젊은 주인공 남자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1890년대에도 사람들은 모여, 그 이전 세대가 좋았다는 한탄을 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지요. 즉, 늘 황금시대를 과거에서 찾는다는.

은퇴하신 교수님들을 얼마 전 뵈었는데요. 지금 세대 교수들이 겪는 대학/학과/전공의
구조조정과 통폐합, 입학생 감소, 승진기준의 강화, 비정년 교수로의 전환 등 교수의 삶도 만만치 않은데요, 그래서 이런 경험을 거의 하지 않으신 교수님들을 부러워했더니, 웬걸, 그 교수님들은 그 전 세대,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나라 제 1세대 교수님들을 부러워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누구나 자기 기준에서 이 전 세대와 시대를 부러워하는구나 싶었지요.
사랑도 또 사람도 그리고 과거도, 지나갔기 때문에 혹은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귀하고 소중하고 또 그리운 것이겠지요마는, 이처럼 과거를 동경할수록 현재는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소지가 많은데요. 그것은 또 미래의 희망없음과 맞닿을 수도 있겠고요.
갈수록 높아지는 우리나라 자살율도, 한 편으로는 그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최근 어떤 아랍지역 방송에서는, 우리나라가 왜 자살이 많은지 심도 깊은 분석을 해 놓았는데, 젊은 층의 과도한 학업, 성공에 대한 중압감, 외모 지상주의, 노년기의 경제적 상황 등을 원인으로 제시하더군요. 남의 나라 걱정 말고 너나 잘 사세요, 라고 하기엔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면서 우려되는 바가 많아 걱정이지요.
뭐 다들 속사정이야 있겠지만, 과거 말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조금 더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을까 찾고 싶어지는데요, 다소 헷갈릴 때는 역시 책을 보면 길이 좀 트이지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북하우스, 2012)에는 중국의 옛 시를 이렇게 소개해 놓았네요.

하루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행복은 지금(now) 여기에(here) 있다, 그런 뜻이겠지요. 앞에 소개한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을 1890년대 남겨두고 현재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 곳에 머물면 그 곳이 현재가 되고, 늘 다른 시대를 동경하게 된다는 독백을 남기면서요. 즉 현재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에 따라 황금시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파리는 비 오는 밤거리가 아름답다는 이 남자의 말을 담박에 알아듣는 새로운 여인을 만나, 함께 빗속을 거닐면서 이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아름다운 봄날이 간다고, 갔다고 한탄만 할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박웅현은, 삶은 순간의 합이다, 그러니 현재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애써 권하는가 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야 할, 서로 위로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면, 사는 게 좀 덜 팍팍해 질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 조금 더 힘을 내자고, 삶을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함께 고단함을 견뎌 보자고요. 봄날은 갔다? 아니지요. 우리의 삶이, 이 세상이...늘 찬란한 봄날만 같아라...는 바램이겠지요.


※ 글을 쓴 송혜림 울산대학교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님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