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 산업인가?
김현주 l 건강연대
지난 2013년 12월 13일 박근혜 정부는 보건의료부문의 4차 투자활성화대책(이하 보건의료투자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그 동안 병원이 돈벌이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거추장스러운 규제들을 풀어 줄 테니 맘껏 돈벌이를 하라는 것이다.
1. 병원 영리자(子)회사 설립 허용: 돈벌이 눈치 보지 말고 맘껏 하고 마음대로 빼가라!
우리나라 병원이 비영리법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의아해 한다. 아니, 병원에서 영리행위를 할 만큼 다 하는 것 같은데 비영리법인이라고? 그렇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은 의료법인 또는 학교법인 등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이다. 이렇게 비영리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환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고 사후 치료보다는 근본적인 예방 교육에 더욱 힘을 쏟는 대신 각 종 불필요한 검사와 시술, 입원 권유, 수술 권유 등 과잉 진료를 통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위해 열을 내고 있음을 곳곳에서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의료 영리화, 상업화를 규제하고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병원은 비영리사업의 본질을 해치는 돈벌이를 위한 자회사를 설립할 수 없다. 또한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병원 노동자와 의료진의 인건비, 시설투자, 환자 진료와 관련된 연구비 등 병원 내부에만 쓰이고 투자자들에 대한 이익 배당, 부동산 투자 등 외부로 빼나갈 수 없다. 그런데 정부는 이제 우리나라 병원이 영리자회사를 만들어서 환자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고 그 수익을 주식배당 등 외부로 빼돌려도 된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 병원은 투자자들에게 많은 돈을 갖다 주기 위해 환자들의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더 빼내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2. 부대사업 전면 확대 허용: 병원, 의료종합 주식회사로 만들어라!
우리나라 병원에서 하고 있는 부대사업은 대부분 주차장, 장례식장, 식당, 서점 등이다. 즉 병원의 고유 업무는 진료이지 돈벌이를 위한 부대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직원 및 환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보건의료투자대책에는 영리자회사를 설립해서 환자의 진료와 연관된 모든 분야에서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한다. 즉 병원임대, 의료기기 및 의료용구 개발·임대·판매, 의약품·건강보조식품·화장품 개발?판매, 호텔·온천·헬스클럽 운영 등을 통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병원 자회사는 모(母)병원에 병원 임대료를 높게 받고 의료기기를 비싸게 빌려 줘서 돈을 벌고 모병원은 회사에서 만들어낸 각 종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불필요한 검사를 많이 하고 자회사에서 개발한 각 종 의약품, 건강보조식품, 화장품 등을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처방해서 수익을 올릴 것이다. 이제 앞으로 환자들의 부담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3. 병원 인수 합병 허용: 대형병원 네트워크가 의료시장을 장악하라!
현재 병원은 경영상의 이유이거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그만두고자 할 때 마음대로 개인 또는 다른 병원에 팔 수 없고 그 재산이 국고에 회수된다. 이것은 병원이 비영리법인으로서 세금혜택을 받고 있고 국민건강보험을 주 수입원으로 하고 있어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건의료투자대책에는 병원 간 인수·합병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투자자가 ‘경영상의 이유로’
병원을 팔아버릴 수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고 환자들은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게 된다. 또 대형병원의 중소병원 합병을 부추겨 전국적으로 대형병원의 계열화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렇게 공룡화된 대형병원의 네트워크는 특정 민간보험회사와 계약한 환자들만 받고,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온갖 의료 행위를 맘껏 펼치며, 돈벌이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 차원의 공공보건 의료정책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4. 영리법인 약국 허용 : 약값 폭등!
영리법인약국 허용되면 기업형 체인약국을 만들 수 있다. 기업형 체인약국은 의약품 유통을 장악하여 약값을 올릴 것이며 의약품 끼워 팔기, 부당청구 등 영리행위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 지역 약국 또는 동네약국의 몰락을 가속화하여 국민들의 약국 접근성이 떨어질 것이다. 노르웨이는 2001년 영리법인약국을 도입하였는데 10년이 지나 살펴보니 3개의 법인이 전체 약국시장의 85%를 점유하였고 약국이 대형화가 되었는데도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할 의약품 가격 하락은 없었다. 1999년 이후 일반인 약국 개설을 허용한 네덜란드의 경우 2011년 현재 418개의 네덜란드 지자체 중 무려 44개의 지자체에 약국이 없다.
5. 신의료기술 평가 및 신약 허가과정 간소화: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라!
정부는 엄격하고 충분히 진행해야할 새로운 의료기기와 신의료기술, 신약의 안전성검사(허가검사)를 간단히 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조치는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끝나기도 전에 환자에게 임상실험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국민의 생명보다 의료기기 회사와 제약기업의 빠른 이윤추구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처사이다. 이 조치는 병원 자회사에서 개발한 ‘신의료기술’과‘ 신약’을 충분한 검증과정 없이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환자들은 위험성과 비용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보건의료투자대책은 한마디로 의료민영화 정책이다. 그런데 정부는 거창하게 의료산업 활성화 방안이라고 한다. 의료는 산업이 아니다! 의료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사회보장제도의 하나이다. 따라서 의료민영화 정책을 당장 중단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공의료 기관 확충 등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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