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을 기다리며
최민식 l 상임대표
2013년이 역사 속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의 시작과 함께한 이 해는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까지 어지러운 형국입니다.
「 ……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고려대 주현우 학생이 쓴 글입니다. 이 대자보의 반향이 올 한해를 꿰뚫고 있습니다. 응답의 형태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안녕’이 주제화되어 대한민국 사회와 이 세상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을 "각박한 세상" "몰상식한 사회" "경쟁 사회" "왜곡된 사회" "미친 세상"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세상과 사회가 이 처럼 희망이라곤 없는 곳으로 회자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시대의 반영인 이러한 현상은 역사가 되겠지요. 이 시대의 안부를 묻는 일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옛 기억을 살려 대자보 한 장을 써봅니다.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되는 해괴한 기본권이 되었습니다.
파업은 그냥 불법이라고 헌법에 규정된 듯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파업을 하기만하면 불법이라 하고 사법처리도 모자라 거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나라! 이상한 나라입니다. 파업권은 사용자에 손해를 끼치기 위해 사용되어 지는 것으로 손해배상 가압류 대상이 될 수 없어야 합니다. 경찰까지 손배소송을 하는 나라! 정상이 아닙니다.
정부를 비판하고 의심하면 종북이고 척결돼야하는 매국세력으로 매도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 국민은 종북과 종박으로 구분된다는 놀랍고 어이없는 나라! 비정상 맞습니다. 핵발전의 또 다른 공포-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분신으로 음독으로 70대 노인들이 목숨으로 호소해도 눈감고, 불법을 운운하는 나라! 이건 나라도 아닙니다.
이런 나라에 사는 나는 안녕할까요?”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는 것만으로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해야하는 현실이 짜증나게 합니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태생에서부터 권력행사 전 과정에 걸쳐 요구됩니다.
합법적 폭력기구인 국가의 본래 모습을 그리는 일은 민주주의원칙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시민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국가의 강제력은 정당성을 갖지 못합니다. 그저 폭력일 뿐입니다. 국가폭력은 국민의 저항을 필연으로 불러옵니다. 역사적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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