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최민식 l 상임대표
최 선생님! 속상하시죠. 며칠 전 힘없는 통화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교조가 ‘노조 아님’을 통보 받던 날 결연했던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그 동안 심적 피로가 많이 쌓였나 봅니다. 오늘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다는 소식에 선생님이 보고 싶어 편지를 써 봅니다.
선생님께 법원이 법외노조 통보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아드릴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유신시대의 판결을 보게 될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번 일로 저는 헌법이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달 24일 조합원 수 6만에 설립된 지 24년인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며 ‘노조 아님’을 통보하더니 기존에 체결된 단체협약을 무효화하고, 단체교섭은 중단되었습니다. 77명의 노동조합 전임자들에게는 전임허가 취소와 복귀명령을 내렸고, 미복귀 시 중징계 하겠다고 겁박하며 교육현장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만들었습니다.
최 선생님! 그 동안 힘겹게 쟁취해온 교사의 단결권과 교섭권이 부정되는 이 현실에 얼마나 깊은 자괴감과 분노를 느끼셨습니까? 노동 3권이 오롯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던 어느 선생님의 자조가 무색해진 작금의 패악적 폭력은 이 박근혜정권이 본질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국민의 기본권은 법률로 제한할 수 있지만, 그 제한의 정도는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다는 과잉금지원칙은 우리 헌법을 지탱하는 대원칙입니다. 고용노동부는 해직자 9명 때문에 전교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전교조는 설립신고 이후 14년간 활동을 해왔고 6만 여명의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입니다. 6만 명 중 9명(0.015%)이 문제되니 나머지 59,991명(99.985%)의 단결권을 박탈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이번 일은 국제적으로도 망신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 국제교원단체총연맹(EI),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CU)은 물론 OECD까지 나서 박근혜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습니다.
해직교사라고 해서 교사자격증이 박탈될 수 없듯이 해직교사라 해서 단결권을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만든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최 선생님! 전교조가 정권으로부터 부정당하던 날 새삼 전교조 사랑을 느꼈다고 하셨죠?
“내가 있어 전교조가 있는 게 아니라 전교조가 있어 내 교사 삶이 의미가 있었다”고.
내가 감히 섣부른 전교조 평가를 할 수 없게 하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전교조 사랑합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
고은 선생의 시 ‘가을편지’를 흥얼거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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