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9-05 17:58
[188호] 여는 글 - 1994년 vs 2024년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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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vs 2024년

오문완


딱 30년 전이네요. 1994년의 여름. 제 기억으로는 가장 더웠던 여름날(들). 웹의 세계를 뒤져봅니다. Web-Surfing! 이 얼마나 시원한 용어인가요. 웹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그 시원함과 장대함이라니. 여름이라 그런가요, Surfing하니 Beach Boys의 가 떠오릅니다. 제가 불러드릴 수는 없고, 동영상이라도. https://www.youtube.com/watch?v=2s4slliAtQU
워낙 옛날 노래라 영상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하네요. 가수들은 얼마나 촌스러운지. 그래 도 비키니를 입은 댄서들이 시원함을 더해줍니다. 좀 시원해지셨나요?

그럼, 애당초 하고 싶은 얘기로 돌아갑니다. 더위 아니 무더위라고 해야겠네요. 웹의 세계가 전하는 말씀은 무더위 1위는 2024년(바로 올해), 2위는 2018년, 3위는 1994년이랍니다. 그래도 제 기억 속 1위는 여전히 1994년입니다. 얼마나 더웠던지 식구들은 제주도로 피난 가고(평소 선풍기 없이도 살았는데 너무 더워 선풍기가 필요했고 선풍기를 사러 갔으나……선풍기도 동이 나 남들 안 사는 것들, 쓸데없는 기능을 곁들여서 하나에 20만 원씩 하는 놈들뿐입디다. 현재 20만 원 아니구요 30년 전 20만 원. 얼마나 비쌌는지 이해가 되시겠죠. 이걸 살 수 있나요? 당연히 살 수 없죠.) 저 혼자 서울(정확하게는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을 지켰습니다. 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누군가는 일을 해야 생존할 수 있겠지요. 밤늦도록 사람들은 그늘을 찾아 맥주를 마시며 떠들어대는데(워낙 더우니 잠들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저 혼자 바깥의 소음을 감상하며 따끈따끈한 방구석을 지키던(명상에 잠기던) 나날들. 두 달쯤 집을 지켰는데 나중에는 집 열쇠를 들고 다니기도 귀찮아 대강 두고 다녔지요. 최후의 순간에는 열쇠 쓰는 것도 귀찮아 아예 문만 닫고 다녔구요. 그 결과는 상상에 맡깁니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이라 이 대단했던 기억 때문에 통계로는 올해가 제일 덥다지만 제 기억 속 부동의 1위는 1994년이에요. 아마도 장혜진도 그 기억 때문에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불렀는지도 모릅니다.(외로이 텅 빈 방에/ 나만 홀로 남았을 때/ 그제야 나는 그대 없음을/ 알게 될지 몰라). 아니면 말고.
여기까지 제 얘기를 듣고 이렇게 물으실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2024년 얘기를 할게요. 저는 에어컨 안 켜는 남자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아, 오해가 있을 것 같아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저도 차를 몰 때는 에어컨 켭니다. 너무 좁은 공간에서 찬 기운이 없으면 숨이 막혀 사거(死去)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선풍기 돌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구요. 오늘은 그래도 날도 흐리고 견딜 만하네요. 그 남자가 올해 드디어 에어컨에 도전했다는 얘기! 한 주쯤 전일 것 같아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에어컨을 켜기는 했는데 소음만 심하고 별로 차가워지지는 않습디다. 기계도 그때그때 사랑해 줘야 하는데 너무 방치했기 때문일 겁니다.
에어컨이 왜 문제일까요. 그건 나 살자고 남을 잡기 때문입니다. 선풍기도 오래 돌리다 보면 과열됩니다. 이때 모터에서 뿜어나오는 뜨거운 기운이 공기를 덥히니 너무 오래 트는 건 문제겠지요. 그래도 에어컨보다는 덜 합니다. 에어컨이라는 건 시스템 자체가 우리한테 냉기를 전해주는 장치이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열기를 뿜어낼 수밖에 없죠.(이게 소위 ‘에너지 보존의 법칙’ 아닐까요.) 소위 실외기가 그렇지요. 물론 직장에서처럼 덕트라는 장치를 통해 그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경우가 더 나쁠 수도 있어요. 열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냉기만 탐하게 될 테니까요.

공자님 말씀 곱십어 봅니다. 논어(論語) 첫머리 학이(學而)편 중에서도 첫 번째 구절 들려드립니다. 자왈(子曰):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 여기서 說은 보통은 학설, 다수설-소수설 등등, 아니면 설(썰) 풀고 있네라고 하는 말씀 설이라는 글자입니다. 여기서는 그게 아니고 기쁘다는 뜻의 열(悅)과 같은 글자라고 하지요. 이 열(說)을 기쁘다고 풀이하니 별거 없어 보이는데 실은 그 기쁨이 단순한 즐거움(joy)이 아니라 희열(喜悅, ecstasy)의 경지, 탈혼의 경지, 즉 혼이 빠져나갈 정도의 기쁨입니다. 학습(學習)이라는 게 얼마나 즐겁니, 이게 공자님 말씀이겠지요. 이 구절은 보통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풀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푸는 것은 싱겁지요. 때 시(時)를 ‘수시로’라고 풀이하는 것인데, 이것보다는 신영복 선생님 《강의》에서 읽으셨듯이 늘 상(常)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겁니다. 즉 배우면 그때그때 익힌다는 것이고, 익힌다는 습(習)은 실천한다는 뜻(praxis; practice)이라고 읽으면 됩니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배우고(study) 실천하면(practice) 엄청난 즐거움(ecstasy)이 온다는 게 공자님의 첫 번째 (즐거움에 관한) 말씀인 셈입니다.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에어컨을 쓰는 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안다면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대신하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게 배우는 사람의 도리이겠지요. 선풍기로 부족하면 부채도 곁들어 사용하시길 강추! 에어컨 없이는 도저히 안 된다면 그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차선의 방법은 될 거예요. 어차피 인간이라는 존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겠지요. 기후 위기 시대, 그래도 뭔가는 해야겠지요.

※ 오문완 님은 울산대학교 교수이며, 울산인권운동연대 인권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