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8-04 18:34
[187호] 시선 하나 - 국가인권위원장은 사람에 대한 감수성 있는 사람이어야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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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장은 사람에 대한 감수성 있는 사람이어야
-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이 필요하다

신강협


국가인권위원회의 상임위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인권위원회가 좌파들의 해방구가 되어 있다’고 발언했다. 국회의원 발언의 맥락과 사실 여부는 뒤로 하고, 어떠한 질문이었든 간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국가인권위가 좌파들에 의해 점령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간 국회에서 보여준 그의 발언과 행태는 인권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일반 공무원 또는 그 외 공적 업무를 하는 사람의 보통 수준에서도 상식 이하이다. 국가의 인권 기구를 정치적 진영논리, 좌우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반인권적 인식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인권은 권력에 대한 견제 기구인데, 권력을 구성하는 정치의 논리로 인권을 판단하고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도대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기는 한가?

그의 행태 중에 현 인권위원장이 나이가 많은데 무례하다는 식의 비판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조직의 동료 위원이자 조직의 수장에게 선후배 운운하며 모멸감을 주는 행위는 국가인권기구를 대표하는 인권위원으로서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이 되려고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더불어 국가인권위원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이충상 상임위원은 어떤가? 그는 “기저귀 찬 게이”라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 및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 탓”이라는 막말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그리고 심지어 관련 내용을 보도한 언론 매체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까지 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원고가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했다’고 판결한 보도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인권이라는 시각으로 차마 들여다볼 수도 없는 처참한 감수성과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국가인권위원장 자리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니 처참한 심정이다.

작년, 필자는 태국 방콕을 다녀왔다. 비엔나 인권선언 30주년 및 방콕 아시안 인권선언 30주년을 기념한 인권활동가들의 세미나 자리였다. 그곳에서 대다수의 인권활동가는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에 대해 매우 우려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이 전 세계적인 현상임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양극화 현상은 단순히 의견의 극한 대립을 넘어 상대 진영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사회로 심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극단적인 혐오는 인류의 인도주의적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을 유발하고 있다. 정치적 상대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는 테러 행위는 물론 사회적 약자, 사회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고 있다. 극단의 정치적 대립의 구조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두 상임위원의 행태가 그러한 흐름 속에서 있음이 우려스럽다.
현재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후보추천위가 국가위원장에

지원한 후보를 검토하고 있고, 최종적으로 3-4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게 된다. 필자는 국가인권위원장을 선임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데 그에 견줘보면 현재의 선임 절차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필자는 국가인권기구의 위원장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이념성을 가진 정치의 논리가 아닌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감성의 태도가 필요하다. 인권위원회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곳도 아니고,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거나 관철하는 곳도 아니다. 사회 제도의 운용에 있어서 권력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소수자를 다시 인간의 삶으로 불러내는 곳이다.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사회권에서 배제된 이방인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인간적인 삶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도록 공적으로 말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인권위원회에는 세상을 불법과 합법으로 가르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디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더욱더 극단적인 진영 대립이 심화하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깊어지는 세상에 맞서, 세상의 모든 사람에 대한 따뜻한 감성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인권위원은 다양한 소수자들의 대표성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인권위원의 자격 기준을 정하고 있다. ‘기저귀를 찬 게이’ 또는 ‘좌파들의 해방구’ 따위의 혐오적 표현을 하는 사람의 자리가 결코 아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따뜻한 사람을 골라 국가의 인권 직무를 맡길 수 있을까?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의 임면권은 존중하지만, 인권에 대한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가능성이 있는 대통령에 대해 국민의 간섭과 충고가 필요하다. 인권적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의 인권위원 추천 및 임명 제도는 정치 진영의 영향을 받기 쉽다. 후보 추천권이 정치적 진영에 따라 배분되어 있으며, 한 정치적 진영의 대표자일 수도 있는 대통령의 지명권이 국가인권기구의 의사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보의 추천에 있어서 인류 보편적 인권 기준을 충족하는 전문가 집단 또는 시민인권단체의 추천이 필요하며, 추천된 후보에 대한 투명하고 공개적인 검증 과정이 국민들에게 보장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각 정치 진영의 뜻이 아니라 국민의 뜻과 공감이 반영된 후보가 국가인권보장체제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권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최우선성을 세계인권선언문 전문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인류·가족·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그들의 평등하고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할 때,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화적인 세상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 세계인권선언문 전문 서두

다시 말하지만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린 채 들이미는 저울과 칼이 아니라, 눈을 크게 뜨고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공감하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인권보장체제에 필요하다. 그래야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평화적인 세상,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 신강협 님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