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말, 잘못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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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라는 것은 입안에 든 칼이랑 다를 바가 없지. 그래서 조심하지 않으면 타인은 물론 자신도 해치는 법이란다.”, “하지만 저는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세상에 틀린 말은 없단다.” 힘주어 말하며 할머니가 덧붙였다. “잘못된 말이 있을 뿐이지.” 책, ‘취미는 악풀, 특기는 막말’의 〈말을 먹는 귀신〉 중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있는 그대로 말한 거잖아.”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비판(?)을 받게 되면 흔히 하게 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틀린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따지듯이 말합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지난 총선기간 언론에서는 ‘막말’이라는 단어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막말 논란(?)’에 휩싸여 공천이 취소되기도 하고, 공천을 받은 사람들의 과거 막말과 성차별적인 말들로 인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선거운동기간 역시 상대를 공격하면서 사용된 단어들로 인해 거친 언어를 사용하면서 ‘막말’은 선거기간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정치를 개같이 하는 사람들이 문제”, “깡패들도 그따위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다.”, “의붓아버지 같다.”, “나쁜 짓 하는 자식에게 귀하다고 괜찮아하면 살인범이 된다.”, “000 죽여(야돼)” 등등.
세계 각국의 정치지도자들도 거친 단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얼간이”, “악마”, “악의 축”.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당선된 비에르 밀레이가 후보 시절 프란체스코 교황을 향해서 했던 말입니다.
정치적 정적을 향해 “쓸모없는 기생충”, “인간 배설물”이라고 하는 등 거침없는 단어를 사용하던 그는 멕시코 대통령과도 독설을 주고받으며 외교문제화 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후보의 막말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이구요.
과거에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했거나, 영국 캐머런 총리가 나이지리아와 아프카니스탄을 ‘환상적으로 부패한 나라’라고 하는 등 외교 논란을 일으킨 막말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래에 벌어진 일들은 그 강도가 더 강하고 일상화된 느낌입니다.
‘말은 사람의 사고를 규정한다’라고 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의 막말은 교양 없음이나 도덕적인 문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막말은 노골적으로 상대에 대한 폭력과 증오, 적대감을 추동시키고, 이를 정당화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치적 동기에 기반을 둔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발전되면서 막말은 걱정거리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공포로 다가옵니다. 상대를 인정하기보다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는 순간 사회는 분열과 혼란으로 빠져들게 되죠. 국제무대에서는 전쟁으로 확대되기도 하고요.
정치적으로 진영논리의 강화는 지지세의 강화로 이어집니다. 더불어 상대진영에 대한 적개심도 높아집니다. 양극화된 진영논리가 강화되면 중도층은 설 자리가 좁아집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것 같은 불안상태에 놓입니다. 중립적 위치에 있게 되면 기회주의자나 회색분자로 낙인될 듯합니다. 결국, 양 진영의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예 무관심층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합리성과 협치라는 정치의 명분은 상식이 아닌 희망의 구호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국민은 권력을 잡기 위한 동원대상이 되어버리고요.
총선이 끝난 지 10여 일이 지났습니다. ‘세상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잘못된 말’이 있을 뿐입니다. 타인을 해치고자 했던 말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이제라도 한번 되돌아보면 어떨까요? 선택의 이유들은 모두가 정리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봅시다. 야당을 선택했다면 여당을 찍은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여당을 선택했다면 야당을 선택한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혹여나 그들을 정치적 제거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요? 함께 손잡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나요? 저는 아직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머리로는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해야 한다면서도 ‘함께할 수 있어?’라는 물음엔 고개를 꺄우뚱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아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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