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4-01 14:27
[183호] 시선 둘 - 인권단체 활동가로 2년을 보내며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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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활동가로 2년을 보내며

박은영


광주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학교밖청소년과 10년을 보내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리고 2022년 활짝에 오게 되었다. 광주인권지기 활짝의 후원회원으로 인연이 시작되어 회원 독서모임인 ‘사고뭉치’ 활동과 인권교육으로 활짝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활짝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던 한 명의 회원에 불과했던 나에게 활짝의 상임활동가들이 단체 활동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고 2022년 1월부터 상임활동가로 활짝에서 일하게 되었다. 들어와서 보니 생각보다 단체의 재정 상황은 어려웠고 상임활동가들이 활동비를 줄여 나와 함께 하자고 제안한 상황에 눈치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싶어 미안함과 민망함 사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시민단체들이 다 그렇겠지만 인권의 영역은 실로 방대하여 어느 것 하나 인권과 관계된 일이 아닌 것이 없어 일은 많고 먼저 해야 할 일, 더 깊게 연대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처지가 되어갔다.
단체에 들어와서 인권 사업으로는 내가 기획한 일은 광주의 소수자 시민을 만나는 일이었다. 더 깊게 연대하기 위해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10명 시민들의 생애사를 듣고 기록하는 일인데 나 개인에게는 더 없는 배움의 시간이었고 이 만남을 통해 연대의 영역이 한층 넓어지고 있다.
탈가정 남/여 청소년, 콜센터 노동자, 배달노동자, 뇌병변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의 부모, 결혼이주민, 중도입국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며 함께 하는 인권 활동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2022년 활짝에서 의미 있는 다른 사업들도 진행되었는데 12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인권도시포럼에서 ‘성소수자 세션’을 기획하고 주관하게 되었고, 인권재단 사람의 공모사업으로 ‘성소수자 비현실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지역 성소수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연이어 2023년에 인권재단 사람의 제안을 받아 성소수자 가시화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역의 성소수자들을 만나서 퀴어 영화모임, 타로, 성소수자 세미나를 진행했고 성소수자 당사자와 청년활동가들이 혐오 차별 사례를 모아 혐오 대응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3.8여성의날,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5.17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6월 최저임금 결정시기에 맞춰 비정규직 차별철폐 투쟁 등에 연대하며 상반기 계획으로 더 알찬 기획과 더 깊은 연대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소수자의 문제를 어떻게 가시화하고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당사자만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의 문제로 와 닿게 하는 일 또한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세계인권도시포럼을 통해 전국의 성소수자 운동가들과 교류하는 시간은 의미 있었으나 성소수자 의제에 관심 갖는 지역의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아직 많지 않음을 다시 깨닫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또한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후회보다 다음의 기획을 상상하며 더 넓은 연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인권 운동만 있다면 고생하는 시간도 보람으로 버틸 수 있는데 안타까운 일들도 많았다. 2022년, 나의 운동의 시작인 대안학교들에 위기가 찾아왔다. 광주는 2012년 전국 최초로 ‘학교밖청소년지원조례’를 만들고 중식비와 1인 인건비를 대안학교에 지원했는데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에 시청과 교육청이 서로 일을 미루며 핑퐁게임을 하느라 학교밖청소년의 교육권이 침해될 위기 상황이 생겼다. 광주대안교육기관협의회 간사로 활동하며 이러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 토론회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이런 적극적인 연대가 가능했고 대안학교 선생님들뿐 아니라 학부모와 재학생, 졸업생들 200명이 넘게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우리가 교육운동의 주체가 되는 시간을 공유했다.
잘 만들어진 조례 이후 법이 만들어지며 행정 주체들의 무책임으로 긴 시간 힘들게 싸웠지만, 대안학교 종사자 1인 인건비와 급식비를 사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교육청은 근속을 주장하는 노조 활동이 두려웠는지 인건비를 월급의 형태가 아닌 보조 강사비로 지급하며 4대 보험도 넣을 수 없는 상태로 지원의 규모가 매듭지어졌다. 당장 1인 인건비가 없으면 대안학교 운영이 어려운 작은 학교들이 많아서 더 싸우자고 할 수는 없었다. 대안교육기관법이 대안교육기관에 무엇을 얼마나 지원한다는 내용을 확실하게 다루지 않아서 교육청의 협상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배달이 늘고 배달노동자들이 늘면서 광주광역시비정규직지원센터와 실태조사를 하며 라이더들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조직 사업에 참여하다가 라이더유니온 광주지부의 창립을 함께 했고 운전도 못하는 내가 사무국장으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2023년 배달노동자 지원조례를 만들기 위해 시의원과 지역 활동가들이 라이더들과 여러 차례 만나며 조례를 통과시켰다. 배달노동자들을 위해 뭔가를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시청으로부터 예산이 없어서 어떤 사업도 새로 시작할 수가 없으니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배달량이 많아 입직했던 라이더들이 지금은 불경기라 많이 이직하고 있고, 조례를 만들기 위해 애쓴 라이더 분들도 지쳐있어 걱정이다.

인권 활동과 인권교육을 병행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운 일이고 고달픈 현실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을 받은 삶이라 생각한다. 힘들 때도 있지만 모든 과정이 성장통이라고 여기며 더 성장하고 연대하며 활동으로 얻은 것을 인권교육으로 나누는 인권활동가로 살아가는 일에 후회는 없다.

※ 박은영 님은 광주인권지기 활짝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