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06 13:44
[57호] 편집위 생각? - 마땅히 따라 죽어야 할 사람은 없다
 글쓴이 : 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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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따라 죽어야 할 사람은 없다
주말~!
저녁을 먹고 아내와 티브이를 보며 앉아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화면 속에선 경찰이 조서를 꾸미면서 ‘미망인’이란 단어를 쓰다가, “아직 따라 죽지 않은 사람…….”하고 중얼거리더니 ‘아내’란 단어로 바꾼다.
옆에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정말 그러네. 미망인이란 말 쓰면 안 되겠네.”
내친김에 아이에게 사전을 가져오라고 해서 펼쳐보았다.
미:망인[未亡人] - 아직 따라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죽은 사람의 아내를 이르는 말. 미망인이란 단어는 흔히 쓰인다. 특히 그 단어 속에는 왠지 모를 청초함과 수심 등이 배어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망인의 아내를 격조 있게 칭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여러 유족회 행사 인사말들을 살펴보면 ‘미망인’이란 단어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단어에 깃들어 있는 의미들 들여다보면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배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인 박남옥의 작품 중 ‘미망인’이란 영화가 있다. 전쟁 후 미망인들의 고충과 처지를 여성의 관점에서 그렸다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신’은 남편이 죽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남편 친구에게 매달려 도움을 받고, 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자 다시 쉽게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남자 때문에 딸을 남에게 맡기고 동거에 들어갔다가 그 남자가 이별을 고하자 충격을 받고 칼을 휘두른다. 모성 이전에 전쟁미망인의 고독과 삶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이 영화 속에서 ‘여성’의 삶은 ‘남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 종속된 존재로 그려진다.

초나라 문왕의 부인이 ‘남편을 따라 죽어야 마땅할 사람이 죽지 못하고 살아있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지칭했던 말’이 이젠 아무나 쓰고 있다. 아니 오히려 제3자가 남편과 사별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화된 듯싶다. 어원을 순장제도(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처와 종을 함께 묻었던 장례)에서 찾기도 한다.
아내가 남편이 죽었다고 따라 죽어야 할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수년전까지 크레파스에 표시되었던 ‘살색’이란 단어가 한국기술표준원의 관용색에서 사라졌다. 살색은 문자 그대로 사람의 피부색을 말한다.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살구색(연주
황)’을 황인종의 피부색을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으나 인종차별이라고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미망인’도 이제는 사라져야 되지 않을까? ‘유족’이란 말로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죽은 사람의 아내를 칭해야 한다면 ‘망인의 아내’로 칭하면 된다.
단어 속에 깃들어 있는 차별성을 찾아내고 이를 경계해 나가는 것도 작게나마 ‘인권활동’의 출발이 되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