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cer Mom의 1년
송혜림 l 회원
인터넷을 보니 한국은 요즘 월드컵 예선 이야기가 한창이던데요. 이 곳 미국은 축구보다는 야구가 더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지요. 동네 공원이나 운동장에서 다양한 연령계층의 야구시합을 많이 보게 됩니다. 중년이나 노년의 나이 지긋한 분들이 헬멧을 쓰고 방망이를 들고 작은 소프트볼을 주고 받고 달리는 모습이 처음에는 많이 신기했고요. 최근에는 축구도 활성화되고 있어 축구클럽이 많아지고, 특히 여자축구에 대해서는 이 곳 사람들도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고등학생인 제 아이도 축구클럽에 가입하여 지난 1년간 저도 Soccer Mom으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이 곳 특성 상 아이의 방과후 활동을 위해서는 부모들이 이 곳 저 곳 운전할 일이 많은데, 맞벌이가 많기 때문에 그런 일이 수월치 않겠지요. 그래서, 자녀의 방과후 예체능활동을 지원하는 부모는 나름 열성적이고 또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그런 부모를 일컬어 Soccer Mom이라 부른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아이의 축구 훈련과 경기를 따라다니며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창 사춘기의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이 3개 금지사항(침/껌/욕)을 거의 완벽하게 잘 지키는, 사실 당연하지만 어찌 보면 대견한 모습을 보았고요. 학교에서 낙제를 하거나 성적이 안 좋으면 클럽 가입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학업에도 소홀할 수 없고 주 중 훈련과 주말 시합을 학교생활과 병행하는 일도 쉽지 않을 터인데, 늘 해맑은 모습으로 나타나 열심히 운동하고 부상 중에도 빠지지 않는 성실한 아이들의 모습도요. 무엇보다, 경기는 온 힘을 다 해 하고 그 결과에는 연연해 하지 않는, 져도 기 죽지 않고 이겨도 자만하지 않고 서로를 탓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하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cool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는 것 같더군요. 참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까요. ‘즐기는 게임’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최선을 다 해 하고, 질서를 지키며 성장하고, 또 그렇게 스스로 자존감을 높여가는 멋진 청소년들과 행복하게 보낸 지난 1년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축구를 보며 떠오른 시가 있는데요.
브라질과 독일의 월드컵 결승전이 있기 두 시간 전 히말라야 산기슭의 팀푸 축구 경기장에서는 네덜란드의 한 필름업체의 주관으로 세계 랭킹 202위인 부탄과 203위로 최하위인 몬세라트와의 진짜 꼴찌 결정전이 열렸는데 4:0 홈팀의 압승으로 끝난 이날의 경기 내용보다는 언덕 위 철조망 주변에 모여들어 팔짱을 끼고 응원하던 젊은 승려들의 가지런한 미소와 한쪽 뺨에 발그레한 부탄 국기를 페인팅한 채 수줍어하던 소녀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내내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부탄 진영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던 순한 개의 모습도. <'아름다운 결정전'-이시영>
마치 한 폭의 담백한 수채화를 보는 듯 그 장면이 눈에 선명하게 떠오르지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장석남 시인의 감상은 이렇습니다. “월드컵은 세계대전이다. 월드컵의 발전 방향으로 위의 장면을 꿈꾼다. 지긋하며 평화로우며 져도 그만인 방향이 싫다는 사람 있나? 근데 왜? 그때 홈팀이 압승한 것은 아마도 주인 쫓아 부지런히 뛰었을 개들 덕택은 아니었을까?”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2006년 8월 4일)
이제 1년 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집에서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불안과 걱정이 있지만 기대와 설레임도 있습니다. 크고 거창한 일보다는, 그저 날마다의 일상이 덜 경쟁적이고, 너무 조급하지 않고, 조금은 더 느리게 흘러가면 참 좋겠지요. 실패해도 별 상관 없는 경기처럼 평화롭게. 아마도 그것이 훨씬 더 힘들고 위대한 일이겠지요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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