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감시 사례가 지난 10년 새 50배 이상 급증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노동감시 금지 관련 법 제정 등이 필요하지만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위는 지난 2007년 전자감시로 인한 노동자 인권침해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권고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특히 인권위가 국가인권위법에 의거해 공공부문을 제외한 민간기업 등에 조사권을 발동할 수 없는 현실도 사태 해결을 미루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인권위는 CCTV, 스마트폰 GPS 위치 추적 장치 등 전자감시 기구를 활용한 노동감시 사례가 늘고 있다고 판단해 최근 상임위원회를 열어 ‘스마트 기기에 의한 노동인권 침해 실태조사’ 실시를 의결했다고 4일 밝혔다.
인권위 자료에 의하면 ‘스마트 기기에 의한 노동감시 관련 위원회 진정 및 상담 사례 통계분석’에서 CCTV 등에 의한 영상정보 감시가 484건(68.0%)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GPS 등 위치정보 감시 98건(13.8%), 지문 등 바이오정보 감시 77건(10.8%) 순이다.
일례로 영업직으로 일하는 A씨는 “회사가 무상으로 스마트폰을 보급한 뒤 위치추적을 승낙한다는 동의서를 받고 있다”며 “강압적으로 위치가 노출되는 것 같아 불쾌한데 인권침해가 아닌지 알고 싶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A씨처럼 사측으로부터 위치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인권위에 접수된 상담과 진정 사례는 지난 2001년부터 2012년 말까지 총 663건에 달했다. 진정 16건, 상담 472건, 민원 168건, 안내 7건 등이다.
사측이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는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B씨는 인권위와 상담에서 “사측이 정직원과 협력업체 직원의 개인통장, 통화내역, 가족 신상정보 공개를 요구한 뒤 불응하면 퇴사 또는 고발 조치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CCTV를 설치해놓고 외부에서 스마트폰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거나 외근할 때 위치추적으로 동선을 파악해 추궁하는 등의 진정사례도 계속 접수되고 있다. CCTV 감시 사례를 보면 사측이 음성녹음 기능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진정 및 상담 사례 중에서 노조에 대한 감시 사례가 전체 663건 중 57건(8.6%)로 드러났다. 업종별로 제조업의 경우 23건(40.4%)으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버스와 택시를 포함한 운수업이 11건(19.3%), 금융업 6건(10.5%) 순으로 나타났다.
버스운전사 C씨는 상담에서 “운전석 앞에 CCTV가 설치되어 개인 사생활 침해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고 재치기, 하품, 코풀기 등 생리현상까지 촬영되고 녹음되어 부끄럽다. 경계심으로 정신적 부담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비정규직노조 관계자 D씨 역시 “현장 안에서 작업대에 개인작업 표시하는 PDA에 화장실 가는 것을 체크해 직원들이 감시를 하고 현장에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노동감시 민원 사례는 2002년 3건에 불과했으나 2008년 57건으로 불어난 뒤 지난 해에는 169건으로 10년 사이 56배 증가했다.
정민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뒤늦게나마 인권위가 실태 조사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긴 하나 노동감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데 비해 행안부, 노동부 어디에서도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우려했다.
인권위의 조사 대상도 제한적이다. 인권위조차 관련 자료에서 “주로 노동 감시의 경우 위원회의 조사대상이 되지 않는 사기업 또는 사인, 사단체 간의 침해 사건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진정사건이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민경 활동가는 “인권위 자료를 보면 상담과 민원 건수는 상당히 많은 반면 진정 사건은 현저하게 적다. CCTV에 의한 감시 사례가 484건이나 되지만 진정은 0건이다”며 “이는 인권위가 민간기업에 조사권을 발동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민경 활동가는 “노동감시가 어떠한 해결책 없이 방치됐다는 점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노동감시 금지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정보 동의 여부는 권력구조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며 “노동감시를 금지하는 법 개정이나 특화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출처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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