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은 자기 주체적 결정을 하는 온전한 사람이다
신강협
연초에 연세가 여든이 훌쩍 넘어가는 외삼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밭에 한 번 와서 보고 어떻게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는지 도움말도 주고, 도와줬으면” 하시었다. 이제 밭농사 일이 힘에 부치시는 듯했다. 밭에 가보았다. 300평(991.7㎡)이 넘는 밭에 하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삼촌은 작년에 밭일하시다 넘어지셔서 얼마간 병원 신세를 졌었고, 외숙모님은 허리가 불편해서 비료 포대조차 들기도 버겁다고 하셨다. 말 그대로 어찌어찌 우격다짐으로 농사일하고 계신 셈이었다.
필자가 도움을 드린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외삼촌에게 조금은 강하게 말했다. ‘이제는 농사일이 두 분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니, 여기는 아예 손을 떼시고, 다른 가벼운 운동을 하시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외삼촌은 그러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한 이틀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냥 당신이 밭일하시겠다고, 조금 도와달라고 한 것이지 밭일을 포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주셨다.
갑자기 필자는 외삼촌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본인이 그렇게 이어가고 싶은 일을 제삼자가 맘대로 판단해서 이러쿵저러쿵 외삼촌에게 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농사일의 결과에 상관없이 무엇인가 일하고, 그 일의 결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외삼촌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 같아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모든 일에 수익을 따지고 효율성을 따지는 단순 무지한 필자의 모습이 많이 반성 되는 순간이었다.
몇 해 전 어린이집 부모를 대상으로 인권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훈육할지 늘 고민이 많아 보였다. 사실 필자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들과 고민이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아직 더 배워야 한다, 가르쳐야 한다, 등등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의식이 늘 작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지금 완벽하시나요? 아니면 나이가 지긋이 들어 7-80세 즈음 되는 정도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시나요?
사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나이 정도 즈음의 인생 경험과 습득한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선택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일곱 살 나이의 어린 사람도 자신의 나이에서 최대한 습득한 정보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결정한다. 아이가 옳은 결정을 하고 있을까? 부모 되는 사람들이 옳은 결정을 하고 있을까? 사실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질문이 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그 순간, 그 상황에 대해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곱 살 난 아이의 결정이 부족하다면, 3~40대 어른의 결정도 또한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미성숙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모두 자신의 온 삶을 통해서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자기 결정을 내리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을 자기 뜻대로 구성하고 싶은 나이 어린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어른으로서 필자의 모습 또한 반성이 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리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라고 말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지만, 인권운동을 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그러한 표현은 누군가를 낮추어 지칭하는 것 같아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나이로 인해 무엇인가 모자란 사람이 되어 그 과정에서 배제되고, 결정권이 없는 존재가 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결정을 주의 깊게 듣고 존중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미성숙하다거나 너무 늙었다는 사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와 바람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 부족함을 이유로 그 사람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서로 들어주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메워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공동체는 그러한 모든 사람이 모두에게 서로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곳이 아닐까 싶다.
※ 신강협 님은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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