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5-10-02 11:51
[201호] 인권포커스Ⅱ - 재난 이후에 시작되는 재난, 차별과 혐오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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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에 시작되는 재난, 차별과 혐오

편집위원회


# 이 코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인권교육센터 들’이 연구하여 제작된 <재난 인권교육을 여는 안내서 ‘재난, 인
간의 존엄을 묻는 시간’>을 요약하여 연재합니다. 이번 글은 안내서 2부. 재난이 제기한 인권의 의제들 중 ‘2. 재난
이후에 시작되는 재난, 차별과 혐오’를 요약·편집한 글입니다.

1. 재난 대응 속에 스며든 차별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그 재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보호와 안전을 살피는 일이다. ‘재난에 대한 인권 기반 접근’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보편성과 차별금지의 원칙이다. 재난의 전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 차별이 ‘합리적 기준’이나 ‘불가피한 조치’인 양 버젓이 자리 잡은 경우도 많다.

# 차별적인 시민 통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할 당시 전북 순창군 장덕리는 ‘전국 최초’로 마을 전체가 통째로 격리되었다. 이 마을에 살던 70대 노인이 확진 판결을 받으면서 보건당국은 확진자가 발생한 6월 5일 0시부터 잠복기가 끝나는 18일 밤12시까지 2주일간 주민 126명 전원을 이동 제한 및 격리 조치했다. 이 마을의 확진자는 51번째 확진자였는데, 앞선 50명의 확진자가 사는 지역에서는 폐쇄 조치가 없었다.

# 피해 지원 과정에서의 차별
10·29 이태원참사 희생자 159명 중에는 14개국의 외국인 희생자 26명이 포함돼있다. 각자의 나라에 흩어져 있던 유가족들은 한국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시신을 인도받았으나 그 과정에서 부검 선택권이나 시신 인도 절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 받지 못했다. 사건이 어떻게 조사되고 있는지, 유가족들이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시민대책회의가 외국에 있는 유가족에게 연락을 취해주길 요청했으나 외교부는 ‘담당 부서가 없다.’라는 이유로 연락을 거절했다.
「재해구호법」 등에 따라 이재민을 지원하는 과정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파괴된 삶을 보기보다 경제 논리가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22년 울진 산불로 약 300여 가구가 피해를 입었는데 지원금은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차등 지급되었다. 산불이 나고 약 한 달이 지나고 거주하고 있던 주택이 불에 탄 주민들에게 국민성금과 정부지원금이 지급되었는데, 그 집에 살지도 않은 소유주가 받은 지원금보다 살던 집을 잃어버린 세입자들은 더 적은 지원금을 받았다. 그마저도 자가 소유자들에게는 일괄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된 데 반해 세입자들은 임대료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로 지급이 지연되기도 했다. 재난피해자인 세입자 육한태 씨는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뭐 밟히는 느낌이죠. 너네는 세입자니까 그냥 그대로 살아라. 이놈만 먹고 떨어져라 이런 식이죠.” 실거주자가 입은 삶의 피해보다 주택을 소유한 사람의 재산권이 우위에 놓여야 할 이유가 과연 있는지 질문하지 않는다면, 피해지원제도가 피해자를 오히려 차별하고 모욕하는 결과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 피해자의 다층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 차별
2023년 4월 대전과 충남 금산의 경계지역에서 난 산불로 수백 명이 한꺼번에 대피한 일이 있다. 당시 산불 현장과 가까운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던 장애인들도 임시주거시설로 지정된 3층짜리 복지관으로 대피했다. 갑작스럽게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자기 몸을 때리거나 바닥에 박치기를 하는 등 자해 행동을 취하는 장애인들이 있었다. 신장 장애인이나 중복장애인들은 지속적인 의료적 처치와 장비가 필요한데, 대피소는 그런 지원 환경을 갖추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지금의 대피소는 장애인들에게는 있어도 갈 수 없는 공간인 경우가 많다.
‘원칙이 그렇다’에 머무르기보다 이 원칙이 누구를 놓치고 있었는지, 이 원칙이 만들어지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어떤 것들이 변했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그 제도가 품은 한계와 차별은 보이지 않는다.

2. 재난피해자를 혐오하다.

재난피해자들을 향한 혐오 표현도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표현의 자유’라는 외피를 쓰고 타인의 존엄을 훼손하고 모욕하는 말들이 넘쳐난다.

# 무엇이 혐오표현인가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 따르면 재난피해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크게 “희생자와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 명예훼손과 혐오”와 “참사의 부인과 축소 등 간접 방식을 통한 명예훼손과 혐오”로 구분된다. 전자에는 “직접적 조롱, 비난”과 “부정적 여론 형성”이 포함되는데, 직접적인 조롱과 비난은 반윤리적 발언에 해당하고, “부정적 여론 형성”은 유언비어를 유포하거나 사실을 적시하지만 이에 대한 비난적 평가를 함께 적시함으로써 참사와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참사의 부인과 축소 등 간접적 방식을 통한 명예훼손과 혐오”에는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하지 않지만, 국가적 또는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참사를 부인하거나 국가의 책임을 축소하고 국민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행동을 위축시키는 행위이다.

# 혐오를 추동하는 조건들

* ‘피해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 : 사람들은 피해자들 또한 복합적인 감정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 인권의 주체라는 점, 슬픔 속에서도 분노하고 진실을 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피해자들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피해자다움’, ‘유가족다움’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공감 혹은 동정의 감정을 거두어들인다. ‘진짜 피해자 vs 가짜 피해자’. ‘순수한 피해자 vs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짜놓고 스스로에게 판단자의 자격이나 권위를 부여한 사람은 ‘가짜’ 피해자를 향한 공격을 오히려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로 여기곤 한다.

* 두려움과 공포가 낳은 인지 편향 : 재난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나 또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더 자주 느낀다. 이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와 피해자를 다른 사람으로 분리하고, 내가 피해자와 다른 환경에 있거나 피해자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나쁜 일은 나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고 이 세상은 공정하고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인지 편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지 편향은 정부가 위험 요인을 바로 잡을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 언론의 무분별하고 비윤리적인 보도태도 : 사건이 발생하면 ‘단독보도’, ‘최초보도’와 같은 보도 경쟁이 앞다투어 이루어진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언론사들은 선정적인 사진이나 영상, 확인되지 않은 사실, 각종 자극적인 의견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단 어떤 내용이 기사화되면 시민들은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재난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갖게 될 위험이 크다. 4·16세월호참사의 경우에도 참사당일(2014.04.16)부터 언론사들이 희생자에게 지급될 보험금 문제를 언급하면서 피해자를 향한 질시와 비난, 혐오를 양산하는 발화점을 만들기도 했다.

3. 차별과 혐오가 할퀴고 간 자리

# 차별과 혐오가 빚어내는 결과들


* 침묵시키고 능력을 박탈하는 효과 :
차별과 혐오의 시선과 말들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되고, 자기 경험이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거라는 두려움은 사회적 관계망과 활동의 축소로 이어진다. 혐오의 대상이 되어 경멸받고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평등권과 같은 권리를 주장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 존엄의 파괴 :
차별과 혐오는 그 대상을 위축, 고립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존엄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폭력으로 작동한다.

* 각자도생만이 탈출구가 되는 사회 : 10·29이태원참사에서도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그러니까 거기 왜 갔어?’라는 피해자 비난이었다. 사건 이전부터 계속된 구조요청, 이에 응답하지 않은 경찰과 소방, 인파가 몰릴 것임을 예상했으면서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지자체와 정부 등 왜 공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질문하기보다는 현장에 간 피해자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구조적인 조건이나 시스템을 바꾸는 것보다는 개인이 실수로 판단하는 것이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상호 간의 보호와 구조를 기대할 수 없는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는 사회는 잔혹하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지뢰밭이라면 함께 지뢰를 제거해야 나의 안전도 타인의 안전도 보장된다.

#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국가 : 국가에는 인권 보호를 위한 책무가 있다. 국가가 직접적으로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존중할 의무, 제3자에 의한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보호의 의무, 그리고 당장은 자원과 시스템이 부족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실현할 의무이다.
혐오와 차별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경험했다.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온갖 혐오와 차별, 급기야 개인 신상까지 파헤치는 상황이 발생하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차별과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차별·배제가 아닌 협력·연대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별과 혐오가 전부 소멸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사회 전체가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