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이 제기한 인권의 의제들 「깊어가는 불평등, 위기의 재난약자」
편집위원회
# 이 코너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인권교육센터 들’이 연구하여 제작된 <재난 인권교육을 여는 안내서 ‘재난, 인
간의 존엄을 묻는 시간’>을 요약하여 연재합니다. 이번 글은 안내서 2부. 재난이 제기한 인권의 의제들 중 ‘1. 깊어가
는 불평등, 위기의 재난약자’를 요약·편집한 글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는 재난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사회 구조와 격차, 기존에 있던 부조리, 불평등이 재난 피해의 크기를 결정한다.”
- 존 C. 머터.
1. 깊어가는 불평등, 위기의 재난약자
재난이 불평등과 어떻게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측면을 두루 살필 때 재난 불평등에 대한 이해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1-1. 재난은 불평등을 타고 흐른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전 뉴욕 주지사였던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는 팬데믹 속에서 모든 인간이 똑같이 위험한‘거대한 평준화(Great Equolizer)’에 처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재난에 노출되었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똑같은 위험에 처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소방청이 조사한 화재발생 시 장애인 사상자 발생비율은 2021년 기준으로 비장애인에 비해 2.2배, 사망률은 9배 높다. ‘장애등급’을 이유로 필요한 만큼 활동지원이 제공되지 않았기에, 언어장애가 있음에도 혼자 있을 때 외부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에, 그들은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까닭에 재난이 터지면 장애인들은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불평등은 특정 집단이 경험하는 재난의 크기를 키운다.
1-2. 불평등이 재난이다.
재난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재난은 사회 내부에서 켜켜이 쌓이고 키워진 위험 요인이 표출된 결과이다. 누군가는 이미 재난과 다름없는 불평등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그들이 놓인 불평등 구조 자체가 재난을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쪽방촌 사람들은 건물 상태가 열악하다 보니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한 곳이 많고 전기료 부담으로 설치 자체를 거부하거나 설치하더라도 틀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이 위험을 줄이려면 에어컨이 아니라 적정한 주거공간이 필요하다.
삶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에너지 공공성을 높여야 하고, 폭염의 주범인 탄소배출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는 불평등 해소와 공공 에너지・주택 정책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폭염과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기업활동의 규제에도 미온적이다. 그렇게 쪽방촌 사람들은 일상의 재난 위에 폭염이라는 재난까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1-3. 재난은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위험 불평등이 재난을 부르고 가난한 이들의 삶에 들이닥친 재난은 그들의 삶을 더욱 궁지로 내몬다. 그리고 재난의 충격이 다시 위험 불평등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2022년 8월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세 명이,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 발달장애인인 50대 여성이 숨졌다. 피해자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지하주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개선,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반지하 침수는 필연이다. 재난으로 인한 생명과 자원의 손실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1-4. 재난 상황에서 약자는 새롭게 구성된다.
지난 2019년 4월 4일, 강원도 고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발생했을 때 방송사 재난 특보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국가 재난 주관 방송국인 KBS를 포함해 MBC, SBS 등은 4일 밤과 5일 아침 재난 특보에서 수어 통역을 지원하지 않거나 뒤늦게 지원해 대피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10시간 가까이 위험에 방치되어 있었다.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이주민, 시설 거주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일상생활에서도 다각적 불평등을 경험하지만, 재난 상황에서는 더욱 다중적인 취약성에 노출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인데,‘재난 약자’에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용어만 보면 자연재해만이 언뜻 연상되는 느낌이다. 용어의 의미를 떠나“약자는 누구일까?” 약자를 비단 장애인에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약자는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약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모르겠다면 잘 찾아보기 바란다. 끝으로,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약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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