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09-30 15:34
[129호] 시선 하나 - ‘주전장’ 영화 관람후기 :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글쓴이 : 사무국
조회 : 4,313  
‘주전장’ 영화 관람후기
-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성경식



30여 년 전 내가 신앙생활을 하던 교회는 일본과 교류가 활발했다. 당시 청년이던 나는 일본 동경교구의 청년들과 여름 한 때를 함께 보낸 적이 있다. 어느 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한국역사를 함께 살펴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당혹스런 표정을 토론 중에 읽을 수 있었는데, 끝 무렵에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일본의 학교에선 오늘 이야기한 가까운 시대의 역사를 자세히 배우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한국 같은 나라들의 반일행동을 언론으로 접할 때 의아했는데, 여기서 그 시대의 이야기를 현실로 만나니 이제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배우지 않는다는 말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그들도 입시를 위한 교육이라 암기학습이 중심이라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 우리가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그 민족의 삶과 혼을 말살하려했다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쓸 수 있고, 후대에게 부끄러운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이 근현대사의 아시아 침략전쟁에서 일으킨 잔혹한 범죄행위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은 부끄러움도 아니요, ‘좋은 게 좋다’고 덮고 넘어가자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보수우익은 여전히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고 아시아의 주인으로 서겠다는 헛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에, 그 욕망의 그늘에 역사를 짜 맞추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기사를 쓴 일본 기자가 일본의 우익들에게 인신공격 당하는 것을 보며, 우익들이 ‘위안부’ 문제를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던 일본계 미국인 유튜버 ‘미키 데자키’가 3년에 걸쳐 일본, 한국, 미국을 발로 뛰며 담아낸 영화 ‘주전장’

관객을 주시하며 엷은 웃음을 띄운 표정으로 조근 조근 그리고 거침없이 의견을 쏟아내는 우익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화가 치밀었지만, 한편 스스로를 그렇게 세뇌시켜버린 그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점을 살짝만 비켜보면 그들이 저질렀던 역사의 참혹한 흔적들이 여전히 현실로 남아있는데, 그들은 그 관점을 돌릴 수가 없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문명한 나라의 우월한 민족이라는 주장을 오늘까지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침략전쟁과 한국, 베트남 전쟁을 통해 일궈낸 앞선 기술들은 이제 가까운 아시아 나라들의 추월로 예전 같은 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베정권은 이 바닥을 차고 올라와야 되는데 끝없이 늪이라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나는 ‘위안부’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가 누굴 ‘위안’한다는 말인가? 전쟁에 강제로 동원한 여성들을 노리개로 삼은 건 ‘성노예’로 표현되는 것이 맞다. 우리가 과거를 되짚어 보는 것은 오늘을 넘어 내일 어떤 세상을 살 것인가이다. 여성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던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그것을 만들어낸 일본이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

어둠이 짙으면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인데, 일본의 역사왜곡을 넘어 아베정권의 수출규제를 통한 경제침략에 우린 혀를 내두를 지경이지만, 일본의 우익정권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아직 숨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뺀다고 했을 때 전혀 반응이 없던 미국이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보호협정을 종료한다고 선언하자 강하게 ‘실망’과 ‘우려’를 표명한 것을 보면 일본은 미국을 든든한 뒷배로 여기고 있으며, 북한에게도 판판이 팽 당하고 있으니, 한국에게 남은 발악을 여지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이리라.

“ 주전장 예약 가능할까요?”
“ 한 자리 남아 있습니다.”
영화가 인터넷에 떴을 때 울산은 상영관이 없어 먼 거리라도 가 봐야하나 어쩌나 고민했는데, ‘울산인권운동연대’에서 이런 관람기회를 주어 반가웠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려고 연락을 기다리다 이 관람도 하마터면 놓칠 뻔 했지만, 다행히 마지막 남은 한 자리로 예약되어 관람할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고맙습니다!!!


※ 성경식 님은 ‘6월의 울산사람들’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