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7-29 14:25
[163호] 이달의 인권도서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정혜원 저 / 서해문집2021
 글쓴이 :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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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

정혜원 저 / 서해문집 2021 / 정리 : 한주희


< 책 속으로 >

딸랑. 손님을 알리는 소리다. 재빨리 손님 수에 맞는 물수건과 에다마메(枝豆)라고 하는 찐 콩을 그릇에 담아 내놓아야 한다. 보통은 미리 준비해두는 편이지만, 손님이 몰릴 땐 금방 동이 난다. 그럼 낭패다. “손님이 기다리잖아!” 점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손님이 우왕좌왕하게 내버려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재빨리, 친절하게 맞이하지 않으면 금세 다른 가게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님을 놓칠 때마다 점장의 한숨이 귓가에 꽂힌다. 2010년 봄 교토역 부근의 한 닭꼬치 가게에서, 나는 ‘파블로프의 개’였다.
일자리는 사람의 존엄과 연결된 문제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서 괜찮은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제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숙련을 외치고, 자신들의 안정된 고용과 고임금을 숙련과 연결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대신에, 지금의 질서에서 배제된 수많은 동료 시민을 위해 게임의 판을 다시 짜야 한다. 그편이 노동자들 자신의 고용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누구든 숙련을 쌓고 필요하면 직장을 옮겨 다니며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공동체가 ‘성벽 안 소수와 나머지’로 구성된 사회보다 더 바람직한 미래라고 믿는다. ---「프롤로그」중에서

프랜차이즈가 대행하는 것은 ‘표준화된 숙련’이지 ‘장인의 숙련’이 아니다. 한계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창업자들이 프랜차이즈에 뛰어든다. 왜 그럴까? 자신도 숙련을 갖추지 못하고, 프랜차이즈에게 숙련을 외주 주지도 못한 자영업자의 현실에 답이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폭로하는 현실이 바로 여기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식당을 열었으면서도, 식당 운영에 요구되는 숙련의 핵심인 메뉴 선정, 재료 조달, 조리, 접객, 나아가서는 장사하는 사람의 ‘자세’까지도 새로 배우곤 한다.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은 외식업 프랜차이즈의 대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장. 종속적 자영업자의 시대」중에서

살아가면서 개인이 마주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생계가 곤란 할 때까지 장수할 위험, 본인이나 가족이 병에 걸릴 위험, 경기변동이나 기술변화로 일자리가 사라질 위험, 일을 하다가 다칠 위험. 이런 위험을 한데 모아 분산시키는 제도가 사회보험이다. 장수의 위험은 연금이, 질병의 위험은 건강보험이, 실직의 위험은 고용보험이, 산재의 위험은 산재보험이 감당한다.---「2장. 고용 없는 노동」중에서 수납원의 약 80%는 여성이다. 네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할 때 공동체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 이 사건은 보여주었다. 어쩌면 수납원이 취약노동에 속한 일자리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정규직화 갈등으로도, ‘없어질 직업’을 둘러싼 해프닝으로도 읽을 수 없다.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 0.5평짜리 톨게이트 부스에 담겨 있었다.---「4장.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때」중에서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쿠팡 같은 온라인 배송업체 주문량이 늘면서 물류 노동 종사자도 증가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이 중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이나 소득 감소 위기의 희생자도 포함되어 있다.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영세 자영업자를 포함한 이 땅의 취약계층은 대거 쿠팡으로 향했다. 나는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이라 할 쿠팡의 물류 현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비극을 기록했다. 그것은 한국의 아마존을 꿈꾸는 이 독특한 업체가 도달한, 인공지능을 활용한 눈부신 성취의 뒷면이다.---「6장. 로켓배송의 빛과 어둠Ⅱ」중에서

보안검색 업무는 인천공항에 필요한 ‘상시·지속 업무’다. 정부 가이드라인상 정규직 전환 대상이다. 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자격’은 정말 ‘시험’과 같은 공개채용으로 측정해야 하는 것일까. 보안검색 요원들은 평균 5년간(3년 이상 근무자 72%) 하루 12~14시간씩 12조 8교대로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208시간의 항공보안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1년에 한 번씩 별도 평가도 받는다. 만일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자격’이 기준이라면,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그 일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격의 증거일 수 있다. 소속이 바뀐다고 해서 이들이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7장. 들어갈 자격 vs. 일할 자격」중에서

문재인 정부가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조의 양보를 자판기에서 음료수 나오는 것처럼 기다렸다. 비전과 전략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노조가 ‘노답’이라고 언제까지 푸념만 할 수 있을까. 협력할 최소한의 명분도 주지 않았으면서. 테이블에 안 나오는 노조를 탓한다면, 테이블에 앉히는 것도 실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실력을 발휘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전체 노동시장이 지금보다 더 정의롭게 작동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여전히 유효한가. 증세로 사회안전망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임금 평준화를 이룰 방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여기에 노사가 주체적으로 참여할 유인을 무엇으로 줄 수 있을까. 우리 공동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공정 담론’이니 ‘능력주의의 폐해’이니 논하기 전에 진보의 대안을 의심하는 게 먼저 아닐까.---「9장. 한국 노동의 딜레마」중에서

< 후 기 >

책에서는 특수노동자 형태 외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형평성 논란, 의사 파업, 하청 노동자, 로켓 배송의 노동자, 다양한 플랫폼 노동자, 중대재해처벌법 등 여러 노동에 관해 다양한 문제점들을 시사하고 있는데 아마 한 번씩은 뉴스로 접했던 것들일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의 이유와 결과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었을 것 같은데 다양한 정보를 얻고 생각을 들을 수 있었으며 한국 노동의 딜레마까지... 가슴 한편이 왠지 고구마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노동의 문제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거시적으로 우리나라 현 노동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책 제목처럼 주요 언론이나 사람들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이야기해나가면서 그 안에 있는 쟁점들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다양한 사례들을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들이라 더욱더 와 닿게 해준다. 현재 노동문제를 한눈에 살펴보기 좋은 책이었다.